사도행전(38강) 하나님을 잘 안다는 익숙함이 가져온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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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38강) 하나님을 잘 안다는 익숙함이 가져온 비극
  • 승인 2009.09.17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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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을 배척하는 유대인들




3차에 걸친 선교여행 동안 바울의 사역의 특징 중 하나는 어느 지역에 들어가든지 먼저 회당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메시야 개념에 익숙한 유대인들에게 메시야로서의 예수님을 소개하기 위한 좋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과연 1세기 당시 사도 바울의 활동 무대가 되었던 회당예배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첫째로, 유대인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암송하는 쉐마(shema) 즉 신명기 6장 4-9절이 선포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 ….”

둘째로, 특정한 기도들이 드려진다. 셋째로, 율법 즉 모세오경 중 일부가 낭독된다. 넷째로, 율법을 설명하기 위해서 선지자의 글이 낭독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설교가 선포된다. 회당장은 누가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선포할는지를 결정한다. 매주 다른 사람들이 선택되어 예배와 설교를 담당하였다. 회당장이 방문한 랍비에게 말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 상례였기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는 항상 회당에 갈 때마다 유대인들에게 설교할 수 있는 ‘열린 통로’(open door)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언급하자마자 그 통로는 닫혀지고 말았다. 그 결과 두 사도는 다시는 같은 회당에서 설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때로는 그 도시에서 쫓겨나기도 하였다.

바울은 전도 여행 중 설교할 때 그의 청중의 성격에 따라 그 메시지를 달리하였으나 언제나 설교의 초점은 그리스도였다.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설교할 때에 바울은 언약, 아브라함, 다윗, 그리고 다른 낯익은 주제들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아덴에서 헬라 철학자들에게 설교할 때에는(행 17:22-32), 그 도시에서 그가 목격한 수많은 우상들을 언급하면서 설교를 시작하였다. 양자의 경우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중심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부활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설교의 내용을 참작할 때 우리 또한 복음을 전할 때, 설교 및 메시지를 듣는 청중의 성격을 고려하여 시작하되, 항상 그 중심은 그리스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선포된 바울의 설교를 듣고 난 후 유대인들을 포함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이에 대해 좀 더 알기를 갈망했음을 보게 된다(행 13:43). 우리는 대체로 바울이 동포 유대인들에게 일방적으로 핍박과 배척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본문에 의하면 그것이 획일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바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 중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개종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결국 바울이 선포한 복음은 유대인들 가운데 믿는 자들을 구별해 냈고, 따라서 바울의 선교가 결코 이방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을 위한 복음은 유대인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들이 사심 없이 복음의 진리를 받아들일 때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을 선물로 받을 수 있으나, 민족적 교만으로 그 마음이 완악해지게 될 때 거절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잘 안다는 익숙함이 오히려 진리를 배척하는 비극을 초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바울은 어느 지역을 가던지 먼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행 13:46). 왜 그랬을까? 복음이 유대인으로부터 왔고 먼저 그들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바울 자신이 유대인으로서 동포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롬 9:1-5; 10:1-3), 바울은 먼저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사실 하나님은 유대민족을 통해서 온 세상이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계획하셨다(창 12:3). 그리하여 바울은 그 자신이 유대인으로서 그의 동포를 사랑했고,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는 자신의 일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백방으로 힘썼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유대인들 중 다수가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깨닫지 못했으며, 하나님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에게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배척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이기도 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비시디아 안디옥의 유대인들의 바울에 대한 핍박의 이유를 누가는 ‘시기’로 설명한다(행 13:45). 여태껏 자기들을 따르던 이방인들이 처음 보는 바울을 따라 개종하는 것을 보고 시기가 가득하였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성공하지 못한 일에서 다른 사람들이 성공하거나, 우리가 추구하는 인정을 남들이 받는 것을 볼 때, 진심으로 그들과 함께 기뻐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시기로 인해 하나님의 일이 중지된다면 이는 대단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게 하는 육체의 일 중 하나로 시기를 포함시켰던 것이리라(갈 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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