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125강) 성경이 열릴 때 바른 진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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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25강) 성경이 열릴 때 바른 진리에 이른다
  • 승인 2008.11.1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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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의 두 제자 이야기




누가복음에만 기록된 엠마오 사건은 “낯선 길손”과의 대화로 시작되어서(눅 24:13-24) 주님의 성경 풀이로 이어졌다가(25-27절) 마지막에는 저녁 식사 장면에서 절정에 이르게 되는데, 이 때 그들은 그 낯선 길손이 주님임을 깨닫고 주님이 어떻게 성경을 열어 풀어주셨는지를 회상하게 되었다(28-32절). 주님과 글로바 부부의 대화는 주님의 죽음에 대한 상반된 해석이 특징적이다.

두 제자들에게는 그것이 비극, 즉 그들이 메시야로 알았던 ‘한 선지자’의 죽음이었다(19-21절).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죽음이 필연적 사건, 즉 메시야가 영광에 들어가야 하는 정해진 길이었음을 성경을 들어 설명하셨다(25-27절). 그리하여 메시야는 이스라엘을 구속하였고, 장차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실 것이다(행 1:6). 그러나 이것은 민족적 개념의 ‘이스라엘’이 아니었다. 주님의 구속은 당대 이스라엘의 메시야 기대사상에 따른 정치적 승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적 견지에서 볼 때, 엠마오 제자들이 처음에 부활하신 주님을 깨닫지 못한 것은, 오늘날의 회의주의자들처럼, 그러한 유의 기적이 일어나리라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천사의 나타남이나 빈 무덤에 대한 소문들은 그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그들은 주님이 이방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속할 유대인들의 민족주의적 기대사상에 의한 메시야인 줄로 생각하였는데, 그 희망이 그의 죽음과 함께 착각임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은 성경을 풀어 설명하시되, 구약의 이곳저곳에서 부분적으로 취하여 제시한 것이 아니라 “모든 성경”을 들어 설명하셨다(27절). 메시야가 고난을 통하여 예정된 영광에 들어가야 한다는 구약의 예언은, 구약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스라엘 나라의 부르심과 운명에 관심을 갖으며, 아울러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메시야가 그 백성의 지도자와 대표자로서 이스라엘의 운명과 사명을 그 자신의 삶속에서 체현(embody)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바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태초부터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의 출현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는 이 세상에서, 이 목적은 백성들 자신이 먼저 수치와 고난을 겪을 준비가 되어 있기만 한다면 성취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구약에서 고난은 이스라엘 백성 자신의 죄에 대한 형벌이었지만(호 5:8-6:3; 사 6:1-9:7), 또한 동시에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의로운 종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이 땅 끝까지 이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방인의 죄를 대신하여 고난 받도록 부름 받기도 하였다(사 40-55장).

여기서 우리는 출애굽의 모형을 발견하게 된다. 이스라엘이 자신의 죄만이 아니라 이방인의 죄를 대신하여 고난 받도록 부름 받았다면, 이스라엘의 지도자이자 대표자이신 주님의 죽음(십자가) 역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의 필연적 과정이었던 것이다.

주님의 죽음에 대한 두 제자의 그릇된 해석은 그릇된 메시야 기대사상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 기대사상은 성경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서 또한 비롯되었다.


따라서 사건을 제대로 알 기 위해서는 성경을 제대로 알아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성경이 그들에게 “열린 후에야” 비로소 그들은 부활 후 영광 가운데 계신 주님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31절 이하).

여기서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결국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오해할 때 거기로부터 모든 그릇된 사상, 즉 사이비 및 이단 사상이 발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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