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97강) 받은바 은혜를 깨닫지 못한 자들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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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97강) 받은바 은혜를 깨닫지 못한 자들의 비극
  • 승인 2008.04.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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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로 알려진 이야기는 삼중전승(triple tradition)으로써 공관복음 모두에 기록되어 있다(눅 20:9-18; 막 12:1-12; 마 21:33-46). 먼저 예수님이 애초에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청중들에게 하신 말씀의 의미는 다분히 이방인의 구원과 관련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 비유가 언급되어진 당대의 정황은 다음과 같다.



팔레스타인과 같은 로마제국의 식민지에서 많은 토지 및 부동산은 외국인들이 소유 하였고, 그것을 소작농들이 임대받아 경작하였다. 그런데 소작농들은 나라의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불황으로 인하여 종종 부재지주에게 지불해야 할 소출(일종의 월세, rent)을 내지 않곤 하였다. 이럴 경우 종종 폭력이 행사될 수도 있었고, 끝내 그것은 살인으로 이어지곤 하였다. 그런 과정 중 만일 토지의 상속자가 죽게 된다면 그것은 ‘임자 없는 토지’로 선언되었고, 그 경우 실제 그 땅의 사용자가 소유권을 갖게 되기도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가복음에서 주님은 당대 유대나라의 일상적 경험으로부터 이 비유를 소개하면서 그것을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유대인들의 잘못된 태도를 설명하는데 활용하고 있다. 아마도 이 이야기를 들은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을 표상하는 포도원이 등장하는 이사야의 포도원 비유를 떠올리게 되었을 것이다(사 5:1-7). 그러므로 유대 관헌들은 불가피하게 주님이 이 비유를 자기들을 염두에 두고 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눅 20:19).



그렇다면 이 비유는 초대교회에서 어떻게 활용되었을까? 아마도 이것을 일종의 알레고리로 이해하면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으로, 주인의 종들은 선지자들로, 아들은 예수님으로, 소작농부들은 유대교 지도자들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눅 20:16)은 이방인들로써 풀이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해석의 흔적이 누가복음에 남아있음을 보게 되는데, 마가복음에 따르면 아들은 포도원 안에서 죽임을 당하고 밖으로 던져지는데(“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막 12:8), 누가는 마태복음처럼 살인이 포도원 밖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포도원 밖으로 내쫓아 죽였느니라 …”, 눅 20:15). 이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이 성문 밖에서 일어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 13:12). 주님의 이 비유를 듣고 무리들이 보인 반응(“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God forbid !, 눅 20:16)은 아마도 그것이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였음을 보여준다.



먼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 초대받았지만, 그 하나님의 진정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거역하다가 결국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까지 죽임으로써 끝내 배신한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구원의 자리를 이방인에게 빼앗기는 운명을 당하게 된 것을 누가복음의 비유는 전하고 있다(참고, 행 13:46). 비록 먼저 부름 받는 특혜가 주어졌기는 하였지만, 그것을 특혜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감사하지 못할 때 오히려 그 자리를 빼앗기고 마는 비극을 그들은 체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도 이런 진리는 마찬가지 일 줄로 믿는다. 받은바 은혜를 감사함으로 인정하지 못할 때 오히려 있는 것마저 상실하게 되는 비극을 맞을 수도 있음을 우리는 언제나 겸허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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