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96강) 권위는 어디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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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96강) 권위는 어디서 오는가
  • 승인 2008.04.0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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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사역 속에 드러난 능력에서




무리들의 환호 속에 예루살렘에 입성한 후 성전을 정화함으로써 탁월한 도덕적 용기와 권위를 보여주신 주님은 이제 날마다 그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자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더 이상 주님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눅 19:47-20:8). 주님에 대한 인기가 그러하자 자신들의 위치에 위협을 느낀 그들은 주님의 존재를 간과할 수도 없고 또한 그에 대해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도 없는 매우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렇다고 주님을 지지할 수는 더욱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님을 함정에 빠뜨려, 로마 정부에 대항하는 범법자로 만들거나 아니면 백성들의 지지를 차단하도록 만드는 발언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눅 20:2,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그의 권위에 대한 질문에 대답함에 있어서, 만일 주님이 메시야 임을 자처한다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로마 총독 빌라도 앞에서 서야 할 내란(內亂) 죄가 될 것이고, 반대로 부인한다면 백성들의 지지를 잃게 될 것이었다.


이러한 교묘한 질문에 대하여 주님은 오히려 그들에게 그들 자신의 질문에 답하도록 만듦으로서 그들을 궁지에 몰아넣었다(눅 20:3,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요한의 세례가 하늘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든지 간에 그들은 궁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들이 회개의 세례를 선포함으로써 유대의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세례 요한의 사역에 대하여 공식적인 견해를 갖고 있지 않음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산헤드린 공회로써는 지극히 난처한 일이 되고 말 것이었을 터인데, 왜냐하면 세례 요한에 대하여 나름대로 입장을 정리하지도 못한 처지에 예수님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말할 계제가 못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다른 교회 관료들이 일반적으로 그러하듯이, 그들은 공적인 통로를 통하여 허락을 받은 사람만이 권위를 행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는 점이다(참고, 행 4:7).



여기서 주님이 세례 요한에 관한 질문을 던진 것은 예수님의 등장과 선포를 합법화하시는 분이 다름 아닌 세례 요한의 등장과 선포를 합법화하신 바로 그 분, 즉 하나님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질문의 포인트는, 세례 요한의 사역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듯이(눅 3:7; cf. 마 3:7) 주님의 사역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용의가 있느냐는 것이다.



결국 교묘한 질문으로 주님을 함정에 빠트려 백성의 지지를 철회시키려는 유대 관헌들의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이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될 때 기억해야 할 말씀을 생각하게 된다: “…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가려니와 …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눅 21:12-15).



이 주님의 예언이 실현된 한 증거로써 우리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도들의 사역을 볼 수 있다(행 4:1-22). 50일 전 스승 예수님을 죽게 만든 유대 관헌 앞에서 “학문 없는 범인”인 그들이 그렇게 담대하였던 것은 결국 성령이 그들과 함께 하시며 도우셨기 때문인 것이다.


 

/ 백석대 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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