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68) 하나님의 뜻에 대한 철저한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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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서(68) 하나님의 뜻에 대한 철저한 순종
  • 승인 2006.01.04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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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교수<천안대 기독신학대학원>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가 끝난 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그리스도의 수난이 시작된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체포되시고(마 26:47-56), 다음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심문을 받으시는 동안(마 26:57-68), 베드로의 실패 이야기가 등장한다(마 26:69-75). 그리하여 이야기는 이제 십자가 처형의 정점을 향하여 달려간다.


그리스도의 체포 이야기는 마 26:52-54만 제외하고는 대개 마가복음 기사와 동일하다(막 14:43-50). 마태는 언제 유다가 제자단을 떠났는지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제 무장한 큰 무리와 함께 주님께 나아왔다. 그러나 주님이 이미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로 결심하였으므로 그러한 큰 무리는 사실 필요치 않았다(마 26:55). 주님 체포의 신호는 입맞춤이었는데, 헬라어에서 이 단어는 필레오(phileo)로서, 사실 ‘사랑한다’는 뜻을 또한 의미한다.

이 신호에 따라 유다는 주님께 입을 맞추는데, 마 26:49에서 그것은 ‘열렬히 입 맞추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한 번의 입맞춤이 아니라 반복적인 입맞춤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스승을 배신하기 위해, 몇 푼의 돈을 벌기 위해 열렬히 입 맞추는 유다의 서슴없는 위선에 전율을 느낀다.



그 때 주님이 유다를 부른 칭호, 즉 ‘친구’란 단어는 마태만이 사용하는 독특한 용어로써,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마 20:13, 22:12).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마 26:50)는 문장의 본래 뜻은 “왜 네가 여기에 있느냐?”인데, 우리말 성경에서는 매우 적절하게 의역되어 있다(참고, RSV 난하주). 마 26:51의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에 하나”는 요 18:10에 의하면 시몬 베드로였다.

그가 칼을 들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랐을 때 주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시며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는 교훈을 주신다(참고 창 9:6, 계 13:10). 이 말씀은 주님의 폭력에 대한 태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마 5:38-42). 그러나 주님의 이 말씀을 절대적인 평화주의에 대한 옹호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분명히 폭력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지만 때로 어떤 상황에서는 폭력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일 수도 있다(눅 22:36). 그렇다면 각 경우에 따라 우리는 한쪽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특별히 이 시점에서 마태가 이를 기록한 것은 주후 66-70년에 발생한 유대인 대폭동의 결과를 염두에 둔 것으로도 이해된다. 주님은 얼마든지 하늘 군대를 동원하여 당면한 위기를 해결할 수 있었으나(마 26:53), 그렇게 하는 것은 구약에 이미 선언된 하나님의 목적을 거역하는 것이었다(슥 13:7; 마 26:31). 여기서 특별히 열두 영(營; 개정개역, ‘군단’)을 언급한 것은 열두 명의 개인이 무장한 군대를 상대할 수 없음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주님 체포 기사에서 두 번 씩이나 저자가 성경 성취를 언급한 것은(마 26:54, 56)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한결같은 섭리에 따라 이뤄지고 있음을 가리킨다. 외형적으로는 주님이 무기력하게 체포되는 것처럼 보이나, 하늘 군대를 부릴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다하는 것은 주님의 의지적인 순종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분의 철저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불순종의 결과로부터 인류는 구원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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