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이웃과 열어가는 ‘작은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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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이웃과 열어가는 ‘작은희망’
  • 승인 2002.0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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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의 태풍이 지나간지 벌써 5년.
사람들은 이제 어려웠던 경제상황을 극복했다고는 말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IMF이전보다 더 심한 갈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아직도 사회의 곳곳에서는 슬픔과 외로움에 신음하는 우리들의 이웃이 있다. 사회의 어두운 구석에서 숨죽이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체 먼기억속으로 사라져가는 IMF늪속에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허덕이고 있다.

IMF아픔 속 탄생

실직으로 역주변과 지하도를 전전하며 술독에 빠져사는 노숙자 김씨, 술만 마시면 때리던 남편덕에 얼굴 성할 날이 없는 이 모씨, 부모의 가출로 생고아가 돼 매 끼니를 걱정하는 영식(가명)… 이들은 사회를 향한 원망과 불평에 하루살이가 힘들었다. 적어도 ‘내일을여는집’을 알기전까지는 말이다.

인천 계산동에 위치한 내일을 여는 집(공동대표 이준모목사).
이곳은 노숙자들이 기거하는 단순한 기숙사가 아니라 고통 당하는 이웃과 함께 하는, 자신감과 희망을 주는 사랑의 공동체이다. 물론 처음에는 노숙자들의 딱한 사정을 돕기위해 시작했던 구제사업의 일부분이었다. 그러나 점차 실직자 및 가족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의견이 확산되면서 지역공동체를 구축 이제는 여성 및 가족쉼터를 위시해 공부방·푸드뱅크·싹싹공동체·점심 무료급식·노숙자 쉼터·계양구 재활용센터·쪽방상담소·가정폭력상담소 등으로 확장됐다.

IMF가 한창이던 지난 98년. 한끼 식사를 해결하기위해 필사적으로 긴 줄에 몸을 끼우던 노숙자들의 참담한 모습을 지켜보며 이준모목사(해인교회·37)는 이 일에 뛰어 들었다. 그리고 교회 성도들 중 많은 사람들이 실직하면서 그들을 위로하기 위한 애틋한 마음도 일조를 했다.

이목사는 실직노숙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이 하나님의 품속에서 희망과 용기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또한 내일의 집에서는 숙식을 제공하는 것 이외에도 컴퓨터교육 등의 재활교육에 중점을 두고있다. 단순한 숙식제공은 오히려 노숙자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노숙생활을 벗어나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그 뒤로 내일을 여는 집을 찾는 노숙자들을 더이상 노숙자로 부르지도 보지도 않았다.

상처받은 사람들의 모임인 쉼터 회원으로서 그들이 내일의 희망과 재활의 의지를 갖도록 하는데 주력했다.이를 위해 이목사는 다양한 재활교육과 함께 계란빵을 구워 파는 사업도 벌여 노숙자들이 자율적으로 운영토록 했으며 여성회원의 경우 칼라점토공예 등의 재활프로그램을 도입해 판매수익금은 작품만든 사람들의 통장에 자활준비금으로 입금된다.

여성문제에도 관심가져

노숙자들도 큰 문제지만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 결손가정의 가족들을 돌보는 것도 시급하다. 힘없이 초췌한 모습으로 쉼터를 찾아온 여성들. 아픈상처를 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던 힘없는 여성들이 무슨 힘으로 일어나는 것일까?

어느 주일날 아침. 비를 맞은 흠뻑 맞은 채 아이를 업은 아이엄마가 초조한 듯 내일의집 문을 두드렸다. 상담원은 예배시간이 임박해 예배 후로 상담을 미루어 놓고 예배당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자(母子)를 주시했다. 아이엄마가 맨발이었다. 비가 오는 쌀쌀한 날씨에 맨발이라면 황급히 도피할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음을 직감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남편은 술만 마시면 닥치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지고 폭력을 밥먹듯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술을 마시지않으면 너무도 온순한 성격의 남편을 사랑으로 감싸안으며 ‘조금만 참아보자 조금만 참아보자’는 심정으로 지금까지 참아왔다는 말을 끝내 잇지 못하고 아이엄마의 볼을 타고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온갖 노력을 해보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생각에 간밤에 황급히 막내를 데리고 집을 나와 인천 버스터미널에서 밤을 꼬박 세운 것이다. 이제는 결단을 해야할 것 같다는 아이엄마의 말에는 눈물과 멍으로 얼룩진 지난 삶이 깊이 배어 있었다. 무척 고단해 보인 아이엄마를 기숙소로 안내하는 상담원은 안타까움과 분노가 교차했지만 이런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어야한다는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워졌다.

이처럼 삶의 막다른 골목에 직면한 이들이 입소해서 재활훈련 상담프로그램을 경험하면서 기적을 만난다. 여성들은 재활의지가 매우 강해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며 바쁜 생활을 살기때문이다. 남성들의 파탄으로 와해된 가정을 추스리고 자녀들을 열심히 보살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준비와 자녀들 학교 보내는 일, 그리고 퇴근하면 고단한 줄도 모르고 자녀들도 씻기고 저녁 준비도 하고 분주하기만 하다. 통장을 맡기고 열심히 일해 어느정도 자립기반을 마련한 사람들은 방을 얻어 나간다. 이곳 저곳에서 보내온 생활용품을 양식과 월세를 지원하기도 하지만 자신들 스스로가 생활하는 똑순이들도 적지않다.

지역공동체로 자리매김

노숙자와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한지 4년째. 이제 내일을 여는 집은 남·여기숙소를 운영하는 것 이외에도 여성 노숙자들의 자녀를 돌봐주는 무료탁아방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를 보내야 하는 아이들 중에 정상적으로 학교에 보내기 어려운 자녀들은 모두 이목사 등본에 오르게 되어 의료보험비도 꽤나 늘었다. 푸드뱅크 운영도 많이 정착했고 냉장고, 그릇 등이 수거되어 자립을 시도하는 노숙자들에게 전달된다.

참담했던 인생에 얽매였던 사람들이 더 이상 인생을 원망하지 않으며 밝은 인생을 사는데 중요한 도우미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 사회 곳곳의 음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기다리고 있다. 여력이 있는 한 이들을 도와야한다며 ‘내일을 여는 집’은 한국교회에 제안을 한다. 종교단체가 주민과 정부를 연결해 지역의 다양한 기제를 체계화하고 재편하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내일을 여는 집’은 아주 머무는 곳이 아니라 잠시 거처가는 중간 집이다. 지치고 힘든사람들이 잠시 쉬면서 기운을 되찾아 일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준비중이다. 이들에게 삶의 기회와 용기를 주려면 내일을 여는 집같은 자선단체를 도와야한다. 내일을 여는 집을 통해 엿본 작은 희망과 기쁨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김광오기자(kimko@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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