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시대 한민족 디아스포라에 준‘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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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시대 한민족 디아스포라에 준‘희망’
  • 현승미
  • 승인 2009.09.2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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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 화제 // 연해주 선교 100주년 기념대회 열린다
▲ 일본에 의해 나라를 잃었던 암울한 시대에 복음은 러시아 연해주에 위로와 소망이 됐다.

909년 장로교 독노회 최관홀 선교사 블라디보스톡에 첫 파송

37년 선교 중단 아픔 겪어…개혁개방 후 공식선교사 활동 재개


올해로 한국교회가 연해주 선교 100주년을 맞았다. 1909년 한국교회가 블라디보스톡에 첫 선교사를 파송했기 때문이다.

1901년 서양 선교사들과 국내 지도자들이 장로교합동공의회를 시작했다. 공의회를 통해 평양신학교가 설립됐으며, 이는 1907년 조선 장로교 독노회를 조직하는 초석이 됐다.


# 해외 선교사 파송 시작

초기 한국교회는 교단별로 선교지를 나눠 관할하는 선교지 분담정책을 펼쳤는데, 1909년 장로교 독노회는 외지 전도국을 설치해 전도자를 해외에 파송하는 일에 힘썼다. 초기 한국교회의 교단별 선교지 분담정책에 따라 장로교는 이기풍을 제주도로, 한석진을 일본 선교사로, 김영제를 북간도로 파송했다. 그리고 평양신학교 2회 졸업생인 최관홀이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 보내졌다.

이것이 러시아연해주장로회공의회의 시작이 됐으며, 올해로 선교 100주년을 맞이한 것이다.

“한국인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교회들이 들어섰고 일본에 의해 나라를 잃었던 암울한 시대에 복음은 위로와 소망이 되었지요. 성도들은 교회에서 고난과 슬픔을 탄원하기보다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주류 사회를 지도해 갔습니다. 그러나 그 기회는 잠시, 1937년 10월 한인들은 한 번도 가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로 버림을 당해야 했습니다.”

한 세기가 흘러 그 역사의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송상천선교사가 당시 연해주의 선교역사를 소개했다.

이후 그 아픔을 딛고 한 세대의 어간에 빼앗겼던 나라는 찾았지만 연해주 땅은 철의 장막과 남북의 분단이란 이념의 질곡으로 드나들 수 없는 땅이 됐다. 그렇게 1937년 이후 연해주 선교가 중단됐다.


# 80년만에 선교발판 마련

그러나 1990년 개혁개방이후 송상천선교사(합동정통선교사회 회장)가 부산영락교회(윤선진목사)로부터 블라디보스톡에 파송받았다. 1991년 12월 24일 개방이후 블라디보스톡에 최초의 종교비자를 받아 선교사로 등록한 것이다. 그가 세운 교회 역시 1937년 이후의 장로교의 역사를 이어가는 교회로 등록됐다.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소련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해 소련선교회를 통해 언어훈련과 파송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2월 24일 예수님의 생일잔치를 하기 위해 저를 포함한 6명이 지유라씨 가정에서 첫 예배를 드림으로 다시 블라디보스톡의 장로교회가 시작됐지요. 그리고 이제 제가 사역을 시작한지 18년이 됐습니다.”

송상천선교사는 첫 예배장소로 블라디보스톡 침례교회 예배당을 빌려서 예배를 드렸지만, 그 해 부활절 예배는 무려 200명이 넘는 고려인들과 러시아인들이 모여 건물 밖에까지 서서 예배를 드리는 감격의 역사를 이뤄냈다.

같은 해 5월 출낀지역의 성도들을 위해 출낀지역 브라치카 15번지에 지교회를 세움으로써 2개의 교회가 세워지게 됐다. 그리고 1996년 현 블라디보스톡 스베틀란스카야 거리 뽀치따브이 뻬레우루록 5번지 건물을 부산영락교회에서 매입해 단독 건물의 교회로 예배드리게 됐다.

“1997년 새로운 종교법으로 14년이 안된 교회는 문을 닫아야 한다는 법령이 세워져 위기가 오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교회 고(古)문서 보관소에서 1924년 장로교회로 등록된 문서를 찾아 70년이 넘는 교회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러시아에 있는 모든 장로교회가 지교회로 인정받아 사역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됐다. 이와함께 1909년 블라디보스톡에서 사역했던 한국 최초의 선교사 최관홀목사의 문서도 찾게 됨으로 100년 전통의 역사를 가지는 교단으로 인정받고 그동안의 선교사역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 현지인 지도자 양성

“지난해 8월에는 아르좀에 한-러 교육문화센터를 열었습니다. 연해주에서 한인선교사들과 연합해 신학교 사역을 감당하던 중 모스크바를 방문해 그곳을 상황을 보고 러시아교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영적 감동을 받게 됐습니다.”

이미 150여명이 넘었던 모스크바 지역의 선교사가 80여명으로 줄었고, 현지인들 역시 통역설교를 못 듣겠다는 건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송선교사를 비롯한 선교사들은 머지않아 연해주에도 모스크바와 같은 상황이 올 것이라는 데 뜻을 같이하고 현지인 지도자를 키우기 위한 러시아목회자신학훈련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한 이준호목사(성남혜성교회)를 통해 러시아목회자 15명을 시작으로 국내에서 러시아목회자신학훈련도 할 수 있었다.

“교인들은 점점 젊어지고 교인들의 학력도 높아지면서 러시아교회의 목회자들의 질을 높이고 신학적 소양도 더욱 쌓도록 도와야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목사님을 보내주신 거지요. 가난한 러시아 목사들이라 항공료부터 비자발급비용까지 모두 이준호목사님을 중심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양을 사랑하는 목자들의 모임(애양목)’ 목사님들이 감당해주셨지요.”

그렇게 10년, 처음 연해주를 중심으로 시작했던 사역은 범위가 커지면서 연해주를 넘어 하바롭스크, 아무르, 사할린, 카챠카, 마가단, 울란우데, 이루크츠크, 주멘스키, 첼랴빈스크, 이젭스크, 야로슬랍스키, 꾸르간 등 동시베리아를 거쳐 중앙시베리아, 서우랄까지 223명의 멤버가 모이게 됐다. 이들은 네트워킹과 정보를 서로 나누며 러시아 내에서 ‘애양목 미니스트리’를 통해 창조과학세미나, 목적40세미나, 말씀묵상세미나, 가정교회세미나를 연중 돌아가면서 개최하고 있다.

한편 러시아연해주장로회공의회(회장:최진선)는 오는 28일부터 30일까지 3일까지 우스리스크, 아르좀, 블라디보스톡에서 연해주장로교선교100주년대회를 개최하고, 100년의 선교 역사를 돌아보는 기념 예배와 현재 활동 중인 한국 선교사, 목회자를 돕는 세미나 등을 진행한다. 또한 10월 1일에는 모스크바에서 러시아장로교창립총회를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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