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일야방성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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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일야방성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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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8.1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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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목사<한국오순절교회협의회 대표회장>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망한다. 더욱이 역사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역사 진행적 계시의 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신앙적 유산으로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한다.

1905년 11월 17일 일본 추밀원의장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에 와서 일본 군인들의 위협 속에서 이완용 등 을사오적을 이용하여 이른바 ‘한일협상조약’이라는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한다.

이를 통분히 여겨 장지연(張志淵) 선생이 11월 20일자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논설을 발표하자 민영환 조병세 등이 자결로써 국권침탈의 부당함을 항의했고 전국의 유생들과 전 현직 관료들이 을사오적의 처단과 조약파기를 주청하는 상소와 시위가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난다. 100년이 지난 오늘의 동북아 국제 정치판세가 그때나 별반 다른 게 없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새삼 ‘시일야방성대곡’의 외침이 심금을 울린다.


“천만 꿈밖에 5조약이 어찌하여 제출되었는가. 이 조약은 비단 우리 한국뿐만 아니라 동양 삼국이 분열을 빚어낼 조짐인 즉, 그렇다면 이등후작의 본뜻이 어디에 있었던가?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대황제 폐하의 성의(聖意)가 강경하여 거절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조약이 성립되지 않은 것인 줄 이등후작 스스로도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도다. 저 개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벌벌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던 것이다.

아, 4천년의 강토와 5백년의 사직을 남에게 들어 바치고, 2천만 생령들로 하여금 남의 노예 되게 하였으니, 저 개돼지보다 못한 외무대신 박제순과 각 대신들이야 깊이 꾸짖을 것도 없다 하지만 명색이 참정(參政)대신이란 자는 정부의 수석임에도 단지 부(否)자로써 책임을 면하여 이름거리나 장만하려 했더란 말이냐. 김청음(金淸陰)처럼 통곡하여 문서를 찢지도 못했고, 정동계(鄭桐溪)처럼 배를 가르지도 못해 그저 살아남고자 했으니 그 무슨 면목으로 강경하신 황제 폐하를 뵈올 것이며, 그 무슨 면목으로 2천만 동포와 얼굴을 맞댈 것인가.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 2천만 동포여, 노예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기자이래 4천년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을사늑약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1904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 7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일본의 한국에 대한 종주권을 인정받았으며, 8월에는 영일동맹조약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그리고 같은 해 9월5일 포츠머스 조약을 통해 러시아로부터 한반도 지도 감리 보호권을 승인 받았다. 이런 국제정치권의 공조 하에서 을사늑약이 체결된 것이다. 지금도 이런 극동지역의 국제정치상황은 변함이 없다.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

8.15 광복 64주년을 맞이해 시일야방성대곡을 우리의 가슴과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스스로에게 경고하자. 북한의 핵무장 세력들에게 경고하자. 지역감정을 이용해 국회의사당에 들어가 국론분열의 난장판을 만드는 신을사오적들에게 경고하자.

역사의 유물이 된 냉전시대의 이념적 갈등을  교육현장과 노동현장에서 정치쟁점화 하려는 철부지들에게 경고하자. 부정과 부패로 배불뚝이 되어 해외 골프장에서 굴러다니는 골프공 같은 졸부들에게 경고하자.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고 중국의 대국굴기(大國掘起)의 야욕을 직시하고 일본의 재무장 간계를 꺾어버리자.

한국교회가 시일야방성대곡 같은 선지자적 외침을 실어 민족의 역사의식을 깨우는 종을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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