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낙원에서 어르신들의 꿈을 되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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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낙원에서 어르신들의 꿈을 되돌려 드립니다”
  • 현승미
  • 승인 2009.07.09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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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들을 위한 무료극장 운영하는 허리우드클래식 김은주 대표
살기 힘들어지고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남보다는 나를 먼저 생각하고, 뭐든지 빨리빨리, 편리하게 되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영화관 역시 즐길거리, 먹거리, 볼거리를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는 멀티플렉스관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러한 때 조금 더디게, 나보다 남을, 어른 공경을 실천하는 영화관이 있다. 70~80년대 영화1번지로 불렸던 종로. 단성사, 피카디리극장과 함께 영화관의 메카로 불렸던 허리우드 극장. 지금은 서울아트시네마와 허리우드클래식으로 나뉘어 운영되며, 일반 영화관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비대중적인 영화를 주로 상영하고 있다.

특히 허리우드클래식은 노인들을 위한 영화를 무료로 상영하며, 그들에게 젊음과 추억을 선물하고 있다.

지난 5일 오후 4시 허리우드 클래식은 단정하게 모자를 쓰고 수줍게 화장을 한 할머니, 머리가 하얗게 샌 할아버지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하거나, 문밖까지 길게 줄을 선 이들에게서 묘한 설레임이 느껴졌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방금 영화가 끝나서 극장 안이 어두워 위험합니다. 준비가 되면 모실테니 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참아주세요.”

극장입구에서 직접 안내를 하고 있는 이는 허리우드클래식 김은주 대표(새문안교회·이수영목사). 매주 일요일 오후 노인들을 위한 무료상영회를 진행하고 있지만, 대우만큼은 멀티플렉스 영화관 못지않다. 아니 그야말로 1:1고객관리로 최고급 영화관을 방불케한다. 김은주대표가 직접 안내를 하고, 계속되는 똑같은 질문에도 생글생글 웃으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매표부터 수표까지 옛날방식을 고수하고 있고, 그리 큰 규모도 아니지만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에게는 낯선 부분들이 있으니까 주말에는 반드시 제가 직접 안내도 해 드리고 영화 시작전에 간단하게 상영영화에 대해 설명해주고, 끝난 후에는 함께 소감도 나눠요."

주말에는 무료영화상영, 주중에는 57세 이상이면 누구나 2천원에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그나마도 기업의 후원을 받아 그 금액에 상당하는 선물로 돌려드리고 있다. 당연히 적자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모든 게 하나님 때문이란다.

“세상이 박하고 힘들잖아요. 사실 동방예의지국이 우리나라의 정통성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러한 인정과 효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것이 결국은 사랑인데, 기독교의 기본 마인드도 사랑이잖아요. 어르신들에게 따뜻하고 좋은 영화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게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김은주대표가 노인들을 위한 영화관을 운영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종로에 있다. 낙원상가를 중심으로 탑골공원까지 옛 추억을 못 잊은 이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 때문이다.

3.1운동의 근원지 종로 탑골공원은 의미가 크다. 70~80대 노인은 이곳에서 젊음의 피를 쏟았고, 60~70대 노인에게는 여가활동으로 영화가 유일했던 그 시절 영화를 보려면 종로에 와야 했던 추억의 장소다.

젊은 시절 그들에게 꿈이 됐던 영화, 가족애가 담긴 영화, 노인의 삶을 재조명한 영화, 그리고 문화에서 소외돼 가는 노인이 보고 싶어 하는 영화를 상영하는 것. 김은주대표가 낙원상가 4층 옥상낙원에서 꿈꾸는 노인들의 지상낙원이다.

“요즘 영화는 자극적인 내용이 너무 많아 사실 목사님들도 영화관에 못 가게 하시잖아요. 그런데다가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어르신들이 가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어렵잖아요. 그런 면에서 저희 극장은 옛날방식을 고수하면서 어르신들이 편하게 와서 보시고 갈 수 있어요. 영화상영작도 마찬가지죠. 자극적이지도 않고, 추억을 꺼내볼 수 있는 옛날 영화를 상영하거든요.”

매달 테마를 정해 호국보훈의 달 6월에는 ‘님은 먼 곳에’,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 투 동막골’을, 7월에는 ‘더티댄싱’, ‘자유부인’, ‘고고70’ 등 춤에 관한 영화를 상영한다.

이렇게 전한 사랑을 김은주대표는 더 따뜻한 마음으로 되돌려 받는다. 매주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보고싶은 영화’와 영화감상평 등을 남기는 설문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늙은이들이 새롭게 살아가야 할 지표로 느껴집니다’, ‘널리 알려져서 실버맨들의 문화의 전당으로 계속 발전하길’, ‘노인을 배려하는 마음 고맙습니다’, ‘젊어지는 느낌입니다’ 등 영화상영후 받는 설문지에 이렇게 김은주대표를 향한 고마운 마음이 전해진다.

“누구나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이 때 꿈을 간직하고 아름답게 늙어 갈 수 있다면 행복하겠죠. 어르신들이 당당하고 아름다운 노인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모태신앙으로 늘 부모의 기도 가운데 살아왔고, 힘들 때마다 하나님을 붙들 수 있었기에 행복하고 감사할 수 있었다는 김은주 대표. 추억을 팔고 사랑을 실천하는 허리우드 극장을 통해 그의 사랑과 감사가 널리 퍼져나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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