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한계가 가져오는 피해 최소화 할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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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한계가 가져오는 피해 최소화 할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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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6.0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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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식교수<이화여대, 죽음학회장>


존엄사란 보통 약에 취해 의식 불명이 되거나 연명 장치와 같은 의료기에 의존하지 않고 품위 있게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죽는 죽음을 말한다. 이 말은 원래 없던 말이었다. 이 말은 최근에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영어로는 ‘natural death`로 표현할 수 있는데 문자 그래도 자연스럽게 죽는 죽음을 말한다.

인간이 자연스럽게 죽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텐데 왜 존엄사라는 단어가 생겨났고 여기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인간의 과학 혹은 의학이 고도로 발전되기 전에는 인간의 죽음과 관련해서 존엄사와 같은 문제가 거의 없었다. 존엄사 문제가 생긴 것은 결정적으로 의학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한 데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전에는 생명이 경각에 달하면 응급조치를 할 수 없어 대부분 그냥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의학의 비약적인 발전에 힘입어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그리고 투석기나 영양공급기 등과 같은 기계가 발명됨에 따라 제 때에만 조치하면 일단 연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심지어 의학계에서는 의료전문가와 제대로 된 기계만 있으면 ‘죽음이란 무한대로 연기할 수 있는 사건’이라는 생각이 나오기도 했다.

우리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 문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과연 생명이 붙어있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계속해서 연장시키는 것이 생명의 소중함을 지키는 일일까? 아울러 그 생명을 인위적으로 늘리는 일은 신의 뜻에 부합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혹시 인공적인 연명장치로 생명을 인위적으로 늘리는 일이 신의 뜻이 아니라 인간이 임의대로 한 것이라고 볼 수는 있지 않을까?

만일 이 의견에 동의한다면 이런 시각도 가능할 수 있다. 즉 생명을 늘리는 일은 인간이 임의대로 해놓고 그것을 중지하는 일은 인간이 임의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것은 논리의 편협한 적용이 아니냐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어디까지 인간의 뜻이 개입될 수 있고 어디부터 신의 뜻에 맞추어야 하는지 객관적으로 매우 엄밀하게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생명의 소중함이라고 할 때 그 소중함이 과연 어떻게 지켜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지 심도 있게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식물인간 상태로 수년 내지 수십 년을 사는 것이 과연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지키는 것인지는 간단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단지 환자를 연명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는 단서는 진즉에 많이 제시되었다. 가장 문제시되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환자의 고통이다. 그런데 이 고통은 무의미한 고통이라는 데에 큰 문제가 있다고 했다. 아울러 가족들 입장에서 부담해야 하는 경제적인 면이나 의료비의 낭비 등과 같이 치러야 하는 사회적 대가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그리고 사회적인 대세도 존엄사를 인정하고 법제화 하자는 쪽으로 가고 있는데 문제는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 연명장치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즉 연명장치를 완전히 거부할지 아니면 이용한다면 어떤 식으로 이용할지 등에 관한 일을 정하는 일이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절대 명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계된 일은 의료적인 문제와 직결되어 있어 일차적으로 전문적인 의료진이 맡아야 할 부분의 일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인간의 생명이 달린 문제라 의료진뿐만 아니라 성직자, 법률가, 복지사 등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여러 각도에서 같이 논의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존엄사를 인정하는 것이 만에 하나라도 생명을 경시하는 쪽으로 경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런 다양한 직종의 전문가들의 연합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확실한 합의를 바탕으로 판단내릴 때 인간의 한계가 가져오는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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