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교회는 주민들이 주보로 전도 대신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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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는 주민들이 주보로 전도 대신해 줍니다”
  • 이석훈
  • 승인 2009.02.1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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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 통한 주민전도로 우상지역 여주에 전도바람 일으킨 ‘여주새소망교회’


14개월 전 지상 4층 규모 극장식 최신시설 건축·예식 공연 등 주민들에게 제공

미얀마 신학교 건립 등 성도들 선교에 온 힘…아동서 노인 위한 복지관 건립 목표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하리 강변도로변에 위치한 새소망교회(담임:노문길목사, 031-886-8891)는 여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 이유는, 10년째 매주 상가와 주택을 돌며 주보를 나눠주고 있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복음의 불모지 여주에 ‘전도바람’

특히 주보에 사진이 소개돼 있는 노문길목사는 지역주민들이 먼저 알아보고 인사할 정도여서 행동가짐이 더욱 조심스럽다고 웃음짓는다.

새소망교회의 주보에는 그 어느 교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문구가 1페이지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동네에서 추천해 드리고 싶은 교회입니다”란 제목으로 장로교회 3곳, 감리교회 2곳, 성경교회 2곳, 순복음교회 1곳을 추천해 주면서 성향에 맞고 가까운 교회에 출석할 것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주보에 추천교회를 소개하게 된 것은 새 성전을 짓기 전엔 새로운 성도들이 많이 와도 수용할 수 없었기에 우리교회 오라고 하지 않고 “가까운 교회로 가라”고 권유한 것이다. 

또 한가지 이유는 여주군기독교연합회 회장을 맡을 당시인 2006년도와 2007년도에 전도 대상자들에게 다른 교회로 가라고 하는게 훨씬 부드럽고 목사들도 좋아하는 모습을 본 것이다.

또한 새소망교회는 남의 교회 성도는 받지 않는다고 소문이 나서 새로 등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불신자들이다.

새소망교회가 전도를 하기 시작한 것은 노문길목사가 3대 목회자로 부임한 99년도부터 시작됐다. 여주는 지역적으로 신륵사와 대순진리회 본부, 세종대왕릉 등 복음의 불모지로 복음화율이 2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었으며, 감히 ‘전도’는 엄두도 못내는 상황이었다.

감리교회가 들어온지 110년, 성결교회가 70년이 넘었지만 11만 군민 중 기독교인은 2만여명에 이르는 척박한 지역이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노문길목사는 효과적인 전도방법을 생각하던 중에 주민들이 받아서 곧바로 버리지 않는 전도지를 만들기로 하고 주보에 그 내용들을 담기로 한 것이다.

주보로 전도할 때 처음에는 핍박도 많았다. 전도 나간 목사와 성도들에게 소금과 물을 뿌리는 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사람들이 더욱 반긴다고 한다. 생전 처음 받아보는 전도지에 주민들이 당황하고 읽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한 주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는 주보전도로 지금은 오히려 기다리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16쪽에 이르는 주보는 대부분이 읽을거리다. 16쪽 가운데 교회가 사용하는 부분은 표지와 예배순서 광고, 금주의 말씀을 포함해 5쪽에 불과하다.


# 우리교회가 아닌 ‘복음’만을 강조

나머지는 성도의 참여, 입술의 열매, 날마다 만나는 은혜의 말씀, 묵상에세이, 격언, 유태인의 천재교육, 의미있는 만화 한 컷, 웃음과 감동이 머무는 곳 등 어린이에서부터 청소년, 장년에 이르기까지 배려해 주민 모두가 최소한 1쪽 이상은 관심 갖고 읽기에 이른다.

특히 학부모들은 자녀교육에 대한 부분, 사업하는 사람들은 성공가들의 이야기, 아이들은 만화, 청년들은 웃음이야기 등이 관심을 갖는 부분이다.

▲ 찬양하는 모습.
 새소망교회의 이같은 전도 열기는 다른 교회들로 이어져 여주 지역에 뒤늦게나마 전도의 붐이 일어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가장 먼저 변한 것은 주보의 변화이다. 또한 성도들이 “우리 교회도 전도 좀 합시다”라고 말할 정도로 변했다고 한다. 따라서 목사들이 전도를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된 것이다.

새소망교회는 담임목사가 직접 전도에 앞장선다. 12명의 전도대원들과 함께 매주 수요일이면 주보를 들고 상가와 주택을 돌며 직접 전달해 주고 있다.

노문길목사는 전도대원들에게 강조하기를 “절대 우리교회에 나오라고 말하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다. 교회를 소개하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 전도지인 주보에 대해 소홀히 여기던 주민들이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면서 읽힐 정도로 변화되어 간접적인 전도자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특히 상가와 노인정 등에서의 입소문은 새소망교회를 여주의 대표적인 교회로 자리잡게 하는 일등공신이 되고 있다.

이렇게 자리잡기까지는 교회의 지속적인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활절과 추수감사절에는 떡을 만들어 주택과 상가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있으며, 노인정에는 정기적인 구제사업을 통해 친밀한 관계를 가져오고 있다.

때문에 이제는 상가와 관공서, 은행 등에 가면 새소망교회의 주보가 비치돼 있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내용이 좋으니까 버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읽도록 권하고 있는 것이다.


# 극장식 새 성전 주민에게 오픈

새소망교회는 지난 2007년 12월 우여곡절 끝에 연건평 5백여평의 아름다운 새성전을 건축했다. 지상 4층 규모의 새성전은 극장식 의자를 비롯해 엘리베이터와 대형 스크린 등 지역주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사용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최신 시설로 꾸며져 여주에서는 최신식 교회로 자리잡았다.

이미 몇차례 영화상영을 했으며, 지역 주민들을 위한 예식장으로 제공돼 ‘지역과 함께하는 교회’로서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 친교하는 모습.
1층엔 어린이집과 사무실, 주차장이, 2층엔 식당과 공부방, 소예배실, 당회실, 기관사무실이, 3층엔 4백석 규모의 본당과 유아실, 방송실이 자리하고 있다.

옥상으로 있는 4층엔 야외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와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으나 조만간 증축하여 4층을 카페와 공연장으로 꾸밀 계획이다.

주일오후예배가 4시면 끝나지만 중직자들은 집에 돌아가지 않고 저녁까지 먹고 집으로 간다. 예배 후 담임목사가 인도하는 성경공부를 마친 중직자들은 옥상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면서 교제의 시간을 나누고 있다.

특히 주간보호센터를 계획하고 있으며, 요양방문센터는 이미 요양사들을 교육시킨 상태에서 개설하여 병원과 집을 방문하면서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새소망교회는 지방의 교회이지만 한달에 선교비만 200만원 이상이 지출될 정도로 선교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얀마에 현지인들을 위한 로고스신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신학교를 졸업하고 교회를 개척한 목회자들에게는 10만원의 생활비를 주고 있다. 미얀마 주민들의 한달 생활비가 3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10만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어서 금년에는 신학교 입학 경쟁률이 7대 1이 넘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필리핀과 중국 등 해외와 국내 미자립교회와 기관 등을 지원하고 있다.

나아가 새소망교회는 어린이부터 청소년과 노인들을 위한 복지관 건립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삼십만명 만나기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즉, 성도들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같은 취지를 설명하면서 30만명에게 1만원씩을 모금한다면 30억원이라고 하는 금액이 모금될 수 있다고 믿고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금년 안에 500명 출석 성도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헌당을 목표로 금년 표어처럼 ‘꿈을 이루는 교회’를 향해 온 성도들은 한마음이 되어 달려가고 있다.


“온전히 순종하는 성도들 있어 행복”

 
● 노문길목사

“지역에 좋은 교회로 소문나 있는 것만도 감사한 일입니다. 전도 많이 하고, 뜨겁게 기도하는 열정있는 교회로 소문나 주민들이 오히려 교회를 알릴 정도여서 부담감도 크지만 지역을 위해 더욱 헌신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1999년 경기도 하남에서 교회를 건축하고 목회하다가 갑작스럽게 여주로 부임한 노문길목사는 10년이라고 하는 짧은 기간 안에 여주에서 대표적인 교회로 자리잡게 된 것에 감사와 함께 부담을 느낀다고 말했다. 특별히 목숨까지도 내놓을만한 성도들이 있음을 무엇보다 자행복하고 랑스럽게 여기면서 감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교회에 부임하면서 전도에 열을 올리면서 직접 성도들과 발로 전도를 한 노 목사의 영향으로 교회 근처에 있던 4~5명의 무속인들이 자리를 감추고 말았다.

노문길목사는 주보가 전도지로서의 접촉점을 갖게 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하소연 하고 다른 교회 성도들도 담임목사에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하소연 하고 있다고 한다.

노 목사는 그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3마디를 전한다. “오늘도 복된 하루 되십시오. 좋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면 사람들은 왠지 뿌듯한 마음에 감사의 인사로 답을 하고 있다.

“목회는 형님이 하고 나는 형님을 물질로 돕겠다”는 생각에 어린시절 서울로 올라와 라면공장에서 기술을 배우는 것을 비롯해 갖은 고생을 하던 노 목사는 1962년 사무실에서 당직을 보다가 강도를 만나 칼에 찔려 창자가 터지는 죽음의 위기까지 경험했다.

그때도 주의 뜻을 깨닫지 못하던 노 목사는 이후 건축 냉난방설비업을 통해 중견기업으로까지 성장시켰으나 거래업체의 부도로 인해 결국 손을 들고 43세라고 하는 뒤늦은 나이에 신학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노 목사의 좌우명은 “할 수 있다. 해 보자. 하면 된다”이다. 이같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도를 시작하여 여주에 전도의 바람을 일으켰으며, 성도들에게도 부정적인 말은 하지 못하도록 강조하고 있다.

노문길목사는 여주지역에서 약하던 장로교들을 하나로 모아 장로교연합회를 만들었으며, 첫 번째 사업으로 부활절 새벽 연합예배와 부활절 찬양제를 작고 시내 전역을 시가행진하며 부활절 계란 2만개를 나눠주기도 했다.

이후 기독교연합회 회장을 맡으면서 이 행사를 여주군기독교연합회 차원의 행사로 발전시킨 가운데 교회들의 연합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현재는 여주시 경목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매주 수요일 경찰서내 설립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경찰 가족들을 포상해 여행시켜 주고 있으며, 기독교사회복지센터 부이사장으로, 기아대책 여주지부 부이사로, 저소득층을 위한 사마리아은행 은행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편 사진을 넣은 명함에도 앞뒤로 전도문구를 새겨넣어 전도지로 활용하고 있는 노문길목사는 교단적으로는 송파노회와 경동노회장을 두차례씩 역임했으며, 총회 전도국장과 재정국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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