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힘들다고 말하고, 실제로 어려움을 실감한다. 조그마한 교회인 우리 교회의 많지 않은 성도들 중에서도 도산하는 기업도 있고, 사세를 급히 조정하는 기업도 있고, 괜찮을 듯 하는 기업도 긴축에, 재정확보에 혈안 하는 모습을 본다.
이곳저곳에서 ‘어떡하지’ 근심의 소리가 높다. 곳곳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좌절하는 이가 속출한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바로 희망을 품은 사람들을 말함이 아닌가. 십자가의 죽음과 무덤 속에서 새생명의 일으킴을 믿는 사람들이 아닌가. 죄로 인한 멸망의 어두움에서 예수그리스도의 값없이 주시는 구속의 은혜로 구원과 구원의 속성으로서의 영생을 가지고 누릴 수 있는 희망이 주께로 온 것을 믿고 누리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리스도인은 결코 희망을 가질만해서 희망을 말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희망을 말할 만한 형편도 처지도 상황도 아니지만 오히려 희망을 품고, 그 희망의 싹을 틔우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후3:15.16)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신 사람들은 그분으로 인하여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의 배경을 말씀하심이다.
예수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기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혹이는 인간의 의지로 희망을 말하기도 하지만, 의지일 뿐이고 욕구일 뿐 실제 할 수 없는 희망의 기대요 노래이었던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후에는 그분으로 인하여 희망을 기대할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가지고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어떤 시련도 좌절도, 난관과 역경도 거뜬히 극복하여 나갈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희망은 좌절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다.
오늘의 경제적 시련은 오히려 우리에게는 기회가 될 것을 기대한다. 이 땅의 모든 것의 값어치가 물질의 값어치로 계산되고 평가되던 것이 그 보다 더 진정한 가치 있는 존재와 일이 있음을 목사도 알고, 교회도 알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깨우침의 기회가 되기를 기대하며 희망을 품는다.
우리의 희망은 경제 회복에 있지 않고, 희망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깊이 있게 깨달을 기회가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물질로 절망하는 사람이 예수로 소망을 품고, 물질로 주인을 삼던 우리 마음의 비늘이 벗겨져서 주인을 바로보고 바로 모시는 기회를 회복함이 희망 중의 희망이 아니겠는가.
두려움과 불안으로 마감하는 2008년을 주님이 의도하시는 은혜 안에서 보내고 2009년을 불안해하지 말고, 한숨 쉬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희망 중에 맞아들이자.
우리가 피부로 느끼며 체감하는 경제적 한파를 통해 오히려 주께로 돌아가는, 은혜로 희망을 잉태하는 새해가 된다면 이보다 더 크고 위대한 희망이 또 어디 있겠는가?
유대 교권주의자들과 로마 권력가와 군인들도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바라보며 어찌 부활을 꿈이라도 꾸었겠는가.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신 예수님은 그곳의 모든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 속에서 “이기었음”을 선언하셨다. 그 이기심이 오늘 우리의 진정한 희망이 아닌가.
죽음으로 이기신 주님에게서 2009년의 이김의 내용을 깨달아 알고, 배우고 희망을 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야 말로 진정한 희망의 사람들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