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무언(有口無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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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무언(有口無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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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2.2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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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찬목사<초동교회>

1963년 11월 22일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J.F.케네디 대통령이 오스왈드의 총격으로 숨졌을 때, 미국 언론은 신문 제1면에 아무런 기사를 싣지 않고 단 한 단어 ‘SHAME"으로만 채웠다. 때론 많은 말이나 글보다 단순하고도 명료한 단어 하나, 또는 부호로 더 강력하게 뜻과 마음을 전할 수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소감을 준비한다.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돌아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고백이다. 틀린 소감은 아니다. 그러나 시론자(時論者)에게 2008년 송년시론(送年時論)을 준비하면서 떠오른 한 해에 대한 소감은, 부호로 표시하면 ‘…’ 이다. 굳이 사자성어로 표현한다면 ‘유구무언(有口無言)’이다.어느 해라고 별로 다르지 않은 느낌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할 말이 없다. 시론자에게 비친 한 해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종교, 남북관계, 세계의 시평(時評)을 점수로 매긴다면, 결코 합격점을 줄 수 없다.

2007년 말 태안반도 앞바다의 기름유출사고에 온 국민이 헌신적인 봉사의 손길로 희망을 안고 시작된 2008년은 억장을 무너뜨리는 사건으로 포문을 열었다.설 연휴 마지막 날인 2월10일 오후 국보 1호인 숭례문(崇禮門)이 불타는 광경에 놀라지 않은 국민이 있었을까? 600여년을 제자리에서 민족의 자랑으로 서 있던 숭례문이 불만을 품은 한 사람에 의해 소실되었다. 우리의 자존심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그냥 할 말을 잃었다.

5월초부터 인터넷을 통해 불을 지핀 촛불시위는 100여 일 동안 온 나라의 밤을 촛불잔치(?)로 장식했다.한 공영방송공사에서 인간광우병 유사 증세를 보이다 숨진 20대 여성의 어머니가 ‘CJD(크로츠펠트야콥병)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군요.’라고 말한 부분 중 CJD를 vCJD(인간광우병)로 번역한 자막을 달아 방영하면서 오역의 논란을 낳음으로 번진 파동이었다. ‘쇠고기 파동’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에 대하여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없다. 같은 먹거리 문제였던 중국 발(發) 멜라민 파동엔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던 것이 이상하긴 했어도 할 말은 없다.

4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천냉동창고 화재로 새해 벽두부터 가슴이 아프게 되더니, 탤런트 최진실 씨의 자살사건으로 충격을 받고, 세상을 비관한 한 사람이 고시원에 불을 지르고 ‘묻지마’ 살인을 자행한 사건에는 그냥 기가 막힐 뿐이다. 이런 와중에도 정치인들은 정신 차리지 못하고 국민의 마음을 보수와 진보의 좌우논쟁으로 가르는가 하면, 사회는 어떤 배우의 기부를 이념대립적인 악플로 채색하여 소모적 말을 무성케 하고, 선한 기부에 과도한 세금을 거두어 모처럼 일어나려는 기부문화에 찬물을 끼얹기도 하니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정부와 불교계의 불편한 관계로 할 말도 못하게 하더니,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슬그머니 4대 강 정비사업으로 변신시켜 생태계를 파괴하는 정부의 정책에는 두 손 들 수밖에 없다.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미국으로부터 시작된 금융위기의 쓰나미는 우리나라로서는 ‘억!’소리 한번 내지르지 못하고 몸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니 말을 잊게 되었다. 내년을 어떻게 희망적으로 볼 수 있을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형편이다.

아무리 한국야구가 금메달을 따고, 김연아, 박태환, 신지애, 박지성, 이세돌 선수가 국민의 마음을 달래긴 하여도 한계가 있다. 12월의 겨울바람이 차다. 체감온도는 빠른 속도로 하강하고 있다.우리 시대의 희망온도는 몇 도가 될까? 그래도 새 해, 새 날은 온다. 우리에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 믿음으로 새 날에 대한 기대를 희망으로 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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