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국 지원 꼴찌의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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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국 지원 꼴찌의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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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2.1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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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돈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참 부끄럽다. 미국의 글로벌센터라는 기관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세계 22개 부국(富國) 가운데 대한민국이 빈곤국 지원에 가장 인색한 나라로 꼽혔다. 이 기관이 설명한 이유를 보면 ‘한국은 매우 적은 해외 원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고 저개발국에 대한 수출 장벽이 가장 높은 데다 저개발국 미숙련 노동자의 입국 허가율이 아주 낮다’고 한다.

정말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을 아주 단순 명료하게 꼬집어 준 평가라고 본다. 세계 11위의 경제 규모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이 지구촌의 가난한 나라들에 대해서 부채의식을 가지지 못했다.

외국에 어떡하면 수출을 많이 할까를 고민했지 우리나라에 수출하고자 하는 나라들에 대해서 어떤 배려를 해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를 성경이 말하는 나그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들을 예수님으로 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어쩜 이렇게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잘도 집었는지 부끄럽기가 한이 없다.

요즘 국회에서 예산안 심의를 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이런 부끄러움이 있는지 궁금하다. 지역구의 예산을 따내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매년 듣는 이야기이고, 정치적 논리에 의해서 심의과정이 아니라 심의를 마치는 날을 볼모로 해서 올해도 또 대략 예산은 국회를 통과할 것 같다. 273조 이상이 드는 한 해의 정부예산 중 우리는 어느 정도를 빈곤국에 보낼 수 있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여야의 논의를 보면 그러한 생각은 안중에 없는 것 같으니 아직 우리는 세계의 리더가 될 자격이 없는 것 같다.

이러한 사회의 분위기에 반해서 그래도 교회는 그간 꾸준히 세계를 향해서 구호활동을 펴왔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구호단체들은 실제적으로 교회의 배경에서 태어났다.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국제기아대책본부, 컴패션, 해비타트 등이 해외에서 국내의 교회 조직을 통해 들어왔거나 국내에서 교회를 배경으로 자생적으로 생겨난 기관들이다. 그리고 각 선교단체들이나 교회를 통해서, 그리고 여러 배경의 선교사들을 통해서 한국교회는 많은 부분 세계의 가난이나 어려움에 대해서 외면하지 않고 참여해 왔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전도나 선교라고만 생각을 해 왔기 때문에 이것을 지구촌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라고 이해하지 못했다. 즉, 교회는 교인들에게 이러한 일을 하면서 이기적 동기만을 주지시켰지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웃사랑이라고 생각을 못한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선교사들에게 얼마를 지원해 주면 전도가 얼마나 됐는지 어떠한 실적이 있는지를 따져 묻게 되는 것이다. 즉, 이기적 관심에 효율성을 물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세계에 나가있는 선교사들과 각종 NGO 단체들을 통해서 굶주림에 지쳐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빵을 전달하고, 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우물을 파주고 있다. 그리고 한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며 학교를 세우고 다양한 방면의 교육을 실행하고 있기도 하다.

바로 이 선한 행위들을 ‘인류애’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점점 좁아져 가는 이 지구촌 안에서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특히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깨어난 제자로서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으로서 우리를 부르시고 그렇게 살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결코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머물지는 않는다. 이것을 우리가 이제는 이 한국 사회와 나누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전도나 선교라는 용어 대신에 인류애에 근거한 구호와 봉사라는 보편적 언어를 선택하고 그렇게 설명하고 나눌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하고 있으니 대한민국도 함께 이 길로 나아가자고 주장하고 권고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 사회와 소통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이것이 우리 교인들에게 요구되는 ‘열린 시민의식’이다. 이러한 의식이 우리 가운데 있다면 대한민국은 한국교회를 통해서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필자의 확고한 신념이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을 부르던 우리 믿음의 선배들도 분명 이러한 꿈을 같이 꾸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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