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함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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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함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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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2.0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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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인목사<예장 통합 기획국장>


초등학교 시절 학생 기록부를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성격이 밝고 활달함, 책임감이 강하고 급우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어린이, 주의가 산만하고 내성적임 등등. 읽노라면 그때의 담임선생님의 얼굴, 겨울철 교실 난롯가의 광경, 여름날 운동장의 더위 등이 고스란히 느껴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 담임선생님은 수많은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한명 한명의 성격의 좋은 점과 고칠 점을 기록해 주셨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어느샌가 초등학교 시절에 배우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인 정직과 성실을 점점 잊어버리며 살아가는 내 모습에 깜짝 깜짝 놀라는 요즈음이다.

약속을 지키는 것, 설령 그 약속이 나에게 불이익을 가져다준다 할지라도 지키는 미덕은 찾아보기 힘들다. 약속은 어떤 것이라도 경중을 따질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약속이라도 그 중요함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특별히 기독인들에게 있어서 약속은 매우 귀중하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기본이 하나님이 우리와 맺으신 계약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약속들을 신실하게 지키시기에 우리들은 살아갈 수 있다. “오 신실하신 주 내 아버지여 늘 함께 계시니 두렴없네 그 사랑 변찮고 날 지키시며 어제나 오늘이 한결 같네...” 태초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우리와의 계약을 지키시는 이, 그분의 신실하심으로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사회 속에서 약속이 깨짐으로 인한 불행들이 너무 많다. 이제는 30-40년을 해로하는 부부들을 만나보기 힘들다. 한 직장에서 25년 이상을 꾸준히 일하는 것을 더 이상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다. 연봉을 조금이라도 많이 준다면 지체 없이 옮겨가는 것이 요즘의 세태이다. 불성실함은 이제 사회 전반에 만연한 심각한 질병이라고 보인다. 오히려 성실하게 약속을 이행하는 사람들이 비정상적이거나 무능력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만약 우리 하나님이 그때그때 이익의 유무, 대소에 따라 움직이신다면 우리 중 누가 과연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다르게 생각한다면 믿음의 사람이라 불리 울 수 있을 것인가.

신실함이란 이렇게 한결같은 믿음, 약속을 지키는 굳은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깨어진 관계들과 상처 받은 영혼들을 치유할 수 있는 힘도 한결같은 신실함에서 비롯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롭게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약을 굳게 지키는 믿는 자들이 되어야할 것이다.

때를 따라 지키다가 말다가 하는 믿음이 아닌, 눈치 보는 믿음이 아닌, 이익에 왔다 갔다 하는 믿음이 아닌 정말 한결같은 신실함을 우리 교회 안에서 보고 싶다.

세상의 고통과 억압에 민감하셨던 그리스도의 삶을 다시 한 번 새겨보는 시절이다. 아기 예수의 나심을 기다리는 간절한 시절이다. 이번에 태어나실 예수 그리스도와 다시 한 번 깨어지지 않을 약속을 맺고 싶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주를 섬기겠노라는 약속, 세상의 그늘진 곳에 함께하겠다는 약속, 억울하게 억압당하는 사람들이 없게 되도록 교회가 그들과 함께 하겠다는 약속, 내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이 드러나게 하겠다는 약속…. 하기만하고 지키지는 못했던 약속들이 부끄럽지만 다시 한 번 계약의 하나님을 기억하며 주님과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는 대림절 기간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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