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과 차별의 ‘동성애 혐오증’에서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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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 차별의 ‘동성애 혐오증’에서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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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0.2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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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교수<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장>


동성애는 이성애와 일부일체라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어긋난다. 결혼제도는 문화가 아니라 창조의 질서이다. 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하나 창조질서는 보편적이며 영구적이다.


동성애 지지자들은 논의에서 창세기 1장과 2장을 생략하고 있다. 동성애는 창조질서에 대한 위반이므로 문화질서로 간주하여 허용될 수 없다.

‘순리’란 인간의 성향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말한다. 동성애자들은 자기들의 성향이 타고 난 것이기 때문에 순리이며 자연스럽고 순리라고 말한다. “정상성이나 자연스러움을 정하는 영원한 기준이란 없다”는 동성애자의 주장은 성경의 기준에 맞지 않다.

로마서 1장에서 말하는 ‘순리’란 이성애자들의 성도착 행위가 아니라 자연, 즉 창조 질서에 대립되는 모든 인간의 행동이다.

동성애자들은 사랑과 새 도덕(new morality) 내지 상황윤리(situation ethics)를 혼동하고 있다. 동성애자들도 동성간의 사랑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이성간의 사랑과 다를바 없다”고 주장한다.

“더 이상 ‘왼손잡이’에 대한 비난 이상으로 ‘동성애’를 비난해서는 않된다”, “관계의 성격과 질이 중요하다”, “남성 및 여성 동성애자들이 가지는 영구적 관계는 자신의 성을 표현하는 적절하고도 기독교적인 방식일 수 있다” 등의 이러한 동성애 옹호자들의 주장은 동성애를 명확하게 거부하는 하나님의 뜻을 인본주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동성애 문제는 결혼과 같이 근본적인 문제이지 문화적 문제가 아니다.

1996년 11월 미국의 Christianity Today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의 신학자 판넨베르크도 동성애에 관하여 아주 보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성경은 동성애 행위를 명백하게 거부해야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한 “동성애 결합을 결혼과 대등한 것으로 인정하는 교회는 더 이상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억압, 해방, 권리, 정의의 개념을 바르게 정의해야 한다. 동성애자들이 동성애 공포증의 희생자라면, 그들이 멸시받고 거부당한다면 그들의 억압, 해방, 권리, 정의주장은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들의 부당함과 불의가 동성애관계를 이성애 결혼과 동등하게 합법적인 양자택일 사항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라면, 이들의 주장은 부적절하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을 ‘권리’로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성애자를 노예, 흑인, 여성해방과 유비관계로 보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노예제도, 흑인차별, 여성차별 등은 창조의 질서가 아니라 인간의 죄악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용납과 복음이라는 논거도 그대로 동성애자에게 적용될 수 없다.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신다는 말은 동성애를 그대로 받아주신다는 것이 아니다. 계속 동성애를 행하는 죄인을 용납하신다는 뜻은 아니다.

예수는 ‘죄인들의 친구’였다. 그러나 그는 우리를 죄 가운데 그대로 있으라고 하지 않고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라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요8:11)고 말씀하신다. 그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변화시키기 위하여 우리를 환대하신다.

교회의 과제는 동성애자들에 대하여 편견과 차별을 하는 ‘동성애 혐오증’에서 나와야 한다. 교회는 이들을 소외된 인간으로 인격적으로 대면하고 공감과 위로와 격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이들이 변화된 인격과 세계관을 갖도록 해주어야 한다. 교회는 이들을 외면하지 말고 이들을 우리 가운데 있는 타자로 대해야 할 것이다. 이들을 위한 전문가를 양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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