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주의가 민심을 얻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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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주의가 민심을 얻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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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9.03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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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엽목사<기독교정화운동 대표>


진보주의는 과연 땅을 잃었는가, 과연 설 곳을 잃었는가라는 질문 앞에 우리는 서 있다. 전문가가 아닌 성직자로써 나는 이 땅의 진보주의는 변혁하지 않으면 영영 설 땅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에서 이 글을 쓴다.

우선 진보주의는 항상 공식처럼 이 땅의 모든 시위문화의 중심에 서있다는 착각부터 버려야 한다. 이번의 중고등 여학생들로부터 시작된 광우병 파동 시위는 어느 식자가 분석한 것처럼 정치적 깊은 배려에서 반정부적 정치시위라고 까지는 말할 수 없다고 본다. 우리는 상식에서 살고 있다. 우선 PD들의 왜곡보도에서부터 공포심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광우병도 아닌 병든 소들의 도수장 행렬이 TV에 비췄을 때 누구나 다 혀를 찼다.

더군다나 잠복기간이 수년 후에 사망한다는 보도가 있었을 때 이명박 정부가 경제를 살린다는 구실아래 국민들을 헐값에 팔아 사지로 몰고 있다는 막연한 공포심이 주부들까지 유모차를 끌고 거리에 나서게 했다고 보아야 한다. 시위운동에서 유모차를 끌고 거리에 나가 낭만적인 시위를 한 예는 어느 시대 어느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본다.

얼마나 평화로운 시위이며 민주적이며 신사적인가? 이를 기회 삼아 극단주의자들이 반정부운동으로 유도하려는 투쟁적인 자세를 취했을 때 퇴출적인 발언을 그 자리에서 서슴없이 하는 것을 보고 어린 민주시민들의 민주정신을 우리는 실감할 수 있었다.

이제는 개발독재의 권위주의 시대가 아니다. 현재의 정부는 자유로운 의사표시에 의해서 국민들이 선택한 정부이다. 그러므로 현 정부는 곧 국민이고 그 의사이다. 비민주적 독재시대의 권위주의 정부하에서는 투쟁적 시위, 투옥을 무릎 쓰고 파괴적 저항도 정당화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런 투쟁이 영웅대접을 받았고 누구나 다 존경했다. 그러나 시대는 한참 지나갔다.

지금은 내가 나를 향하여 자해를 한다 해서 존경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무조건 반대하고 전복하고 경찰이고 뭐고 우선적으로 때려 부수는 수구적 꼴통 시위문화로는 이제는 민심을 잡을 수 없다. 이제 시위문화는 변해야 한다.

진보주의적 이념이 무엇인가? 이 땅에 사는 억눌린자, 가난한 자, 노동자, 농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억울함, 그늘진 곳에서 죽어가는 자들을 해방시키고 보살피는 중생재생의 생명부활 운동이 아닌가? 모택동이 홍위병 운동을 선동하여 지식인 및 갖은자 3천만명을 죽창으로 찔러 죽이고 중공국가를 세운 것을 지금도 아직 중국은 이를 외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이념이 옳았고 진심으로 했기 때문이다. 방법은 잘못되었다 할지라도 이념만큼은 옳은 것이다. 이것이 사회주의의 기본 이념이며 정신이다. 이는 곧 그리스도께서도 강조했던 공평분배의 사랑의 원칙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의 원칙은 오히려 성경적이다.

또 한가지는 통일 이데올로기라는 가면 뒤에 숨은 숭북사상(崇北)이다. 지금 정치적 자유신세대들은 민주주의의 꽃밭에서 성장하고 있다. 북한의 가부장적 정치체제와 수용소 정치실태는 상상도 해 보지 않았고 실감을 하지도 않는다. 통일은 당위지만 통일을 이루려면 요원하다. 독일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무지개 통일이념에 사로 잡혀서 숭북을 미화하는 행태로는 민심을 얻을 수 없다.

친북은 어느정도 이해 되지만 숭북은 국민의 정서가 이를 거부한다. 그런고로 이제 이 비현실적 두 가지 태도를 버리고 진정한 사회주의의 이념에 정직해야만 민심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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