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센세이셔널리즘 위해 기독교 교리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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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센세이셔널리즘 위해 기독교 교리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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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7.16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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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복음서가 한결같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기록

예수의 부활은 일회적 사건, 결코 반복될 수 없다


김영한 교수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장>


SBS가 ‘신의 길, 인간의 길’이라는 제목의 기획 타큐멘터리를 방영했다. 기독교인 시청자들 가운데 많은 물의가 일어났다.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들이 공감적으로 볼 수 있는 공정한 다큐멘넨터리를 제작할 수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사회의 갈등을 조장하는 보도를 하고 있는지 의아스럽다. 그리고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기독교 신앙을 폄하하려는 편파성에 의하여 주도되고 있다.


1. 영지주의 시각에서 역사적 예수 왜곡 - 6년 전 물의를 일으킨 ‘예수는 신화다’를 기반으로 하는 것 자체가 센세이셔널리즘을 지향한 것.


SBS 기획방송 제1부는 이미 2002년 동아일보가 기획으로 번역한 논란의 책, ‘예수는 신화다‘(the Jesus Mysteries)를 중심으로 4차례 다큐멘터리를 준비한 것이다. 당시 이 책은 기독교계의 비판을 받아 재판을 하지 않기로 하고 종결된 바 있다.

그런데 SBS가 기독교 교리에 대해 이단적인 내용들을 담은 주장들을 다큐멘터리 한다는 것은 공영방송의 윤리성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다. 이 타큐멘터리의 의도는 기독교를 왜곡하고 폄하하기 위한 의도가 분명하다고 볼 수 있다. 방송작가들은 이미 논란이 됐던 이 소설과 같은 책을 소재로 함으로써 센세이셔널리즘, 하나의 대중영합주의를 일으켜보자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2. 이슬람 시각에서 역사적 예수 왜곡 - 공정성 상실, 종교학자, 중동문화학자와 인터뷰, 목회자 및 신학자 제외.

SBS 기획방송 제2부는 중동지역을 방문하면서 그곳의 현지민들 및 이슬람 인사들을 만나서 인터뷰했고, 국내 학자 인터뷰는 종교학자와 중동문화 전문가만을 넣었다. 무함마드와 예수와의 비교함에 있어서 이슬람 현지민들, 이슬람 인사들과 인터뷰 했다면, 마찬가지로 이슬람 지역의 기독교 인사들도 인터뷰해야 공정성을 갖는다. 국내에서도 종교학자와 중동문화 전문가만이 아니라 예수에 대한 주제이기 때문에 목회자와 신학자와의 인터뷰를 같이 실어야 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가 어떤 결론을 가진 보도보다는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고 청취자들이 이 주제에 대한 의견을 형성하도록 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공정성이 아닌가? 그런데 SBS는 이데올로기로 편향되어 기독교인 청취자들을 무시하고 있다.


3. 오시리스의 재생 신화는 자연종교의 산물로서 반복적이나 예수의 부활은 대속적 죽음이며 일회적 사건으로 반복될 수 없다.


첫 방영은 신비주의 종교가 프리크와 갠디가 저술한 책을 중심으로 그것이 마치 진실인냥 저자 프리크를 만나 그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신비종교가요 영지주의자라고 보아진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기독교는 역사적 기독교가 아니라 영지주의 기독교이다.

그는 역사적 예수가 실재의 인물이 아니라 지중해 지역에 신비적 인물 오시리스, 디오니수스라는 인물의 신화를 가져다가 역사적 예수가 마치 구세주인 것처럼 각색했다고 주장한다. 오시리스 재생신화와 예수의 부활사건과 전혀 다르다. 오시리스의 재생신화는 농경문화에서 생겨난 자연의 순환주기와 더불어 해마다 반복되는 자연종교의 재생적 부활이다.

이에 대해 역사적 예수의 부활은 인류를 위해 대속적으로 희생한 죽음으로부터 부활로서 다시 반복될 수 없는 유일회적 사건이다.

프리크와 갠디가 주장하는 자료들은 신약성경이 아니라 이집트에서 1946년에 어느 동굴에서 발견된 나그 함마다(Nag Hammadi)문서라는 영지주의 문서들이다. 이 문서에는 예수가 뉴에이지종교가 말하는 신비적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문서들이 이미 논란을 일으켰던 ‘예수, 붓다의 제자가 되다’, ‘다빈치 코드’ 등의 논란 소설을 통하여 이미 보도된 바 있다.


4. 무함마드는 교주지만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무함마드는 단지 이슬람을 창설한 교주이지만, 예수는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둘째 방영은 아랍지역의 이슬람교도들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역사적 예수와 무함마드와의 상관성을 방영하고 있다. 여기서도 이슬람교 신자들이 말하는 무함마드는 역사적 실재인물이나 예수는 역사적 인물인 것이 확실치 않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는 무함마드 보다 7세기 전에 계신 인물이다.

기독교에서 이슬람이 7세기 이후에 나왔으나까 역사적 예수를 전제하지 않은 무함마드는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무함마드는 교주였으나 예수는 하나님 아들이었다. 무함마드는 이슬람교를 만든 종교인이었고 정치가였다.

그러나 예수는 기독교를 만들지 않았다. 예수의 부활 이후 제자들이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신앙고백하는 데서 기독교가 시작된 것이다. 여기서 이슬람교는 역사적 예수에 대해 세가지 왜곡을 하고 있다.

첫째, 예수는 단지 예언자일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는 예언자 이상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예수는 메시아요, 이 세상의 구세주라고 증언하고 있다. 마태와 마가, 누가, 요한, 4복음서가 한결같이 증언하고 있다.

둘째,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야말로 기독교의 진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4복음서가 한결같이 예수는 구세주로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모습, 마리아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오셨다고 증언하고 있다.

셋째, 예수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미 영지주의자들이 십자가에 못박힌 자는 예수가 아니라 유다라고 말한다. 예수는 신화라는 책은 십자가에 죽은 자가 구레네 시몬, 오르페우스, 오시리스-디오니수스 등 여러 사람이라고 모순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슬람교는 이러한 영지주의적 기독교 주장을 수용하여 역사적 예수를 왜곡하고 있다. 이것은 이슬람의 관점에서 기독교를 전형적으로 왜곡하는 내용이다. 


5. 서구 기독교와 영국 청교도 선교사들을 타나섬 토착종교의 파괴자로 왜곡하고 있다.


영국 청교도들은 한국의 초기 선교사들 처럼 남태평양에 위한 미개한 지역 타나 섬에 들어와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원주민들의 개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결코 전통적인 문화를 말살하고자 하지 않았다.

선교사들이 원주민들의 전통음료인 카바음료를 마시는 것을 금지하고, 이웃주민과의 소통인 수단인 춤을 금지한 것은 전통문화가 샤머니즘과 결합(카바음료는 영들과의 교통수단으로 사용)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국인 존 프럼(John Frum)이 와서 전통문화를 회복시킨 결과는 티나섬에 역사적 예수에 대한 교회가 아니라 존 프럼을 메시아 믿는 미신적 기독교를 탄생시켰다. 이것은 혼합주의 기독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 타나섬의 기독교는 역사적 예수를 구주로 믿는 전통적 기독교가 아니라 존 프럼을 메시야로 믿는 무속적 기독교로 변질해 버린 것이다.


진정한 성경의 기독교는 폐쇄되지도 않았고, 독선적이지도 않고, 문화적 다양성에 닫혀있는 것도 아니다. 기독교의 유일성의 근거는 기독교 자체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하며, 그 유일성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지속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는 겸허하게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자기점검을 하면서 이 세상을 향한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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