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장애인의 날] “받은 사랑, 희망되어 세상에 다시 전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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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장애인의 날] “받은 사랑, 희망되어 세상에 다시 전해 드립니다”
  • 현승미
  • 승인 2008.04.17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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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꿈을 펼치며 나누는 장애인들의 가족공동체 ‘무지개동산 예가원’
▲ 7명의 지적 장애인들로 이루어진 난타 그룹 `레인보우 두들소리` 공연 모습

“제 꿈은…우리…두들소리 공연으로…사람들에게..하나님 사랑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언젠가…여자친구랑…(결혼)하고..싶어요. 돈…많이…벌면…아빠 양복…사 드릴꺼예요.” 무지개동산 예가원 레인보우 두들소리팀에서 활동하고 있는 남덕씨는 느리지만 자신 있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다. “헤헤…퍼즐요”, “퍼즐…” 좋아하는 것도, 잘 하는 것도 퍼즐이라는 경희씨. 그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아이 같은 순수한 미소로 대답한다. “안. 녕. 하. 세. 요. 흐흐~” 선영씨는 만나는 사람마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유쾌한 표정으로 반갑게 인사한다.


분당 야탑동 83번지에는 53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살고 있다. 생김새도 나이도 성도 모두 다르지만, 그들은 엄마아빠가 같은 한 가족이다. 남덕씨가 돈 벌어서 양복을 사드리겠다는 ‘아빠’는 정권목사. 이곳 무지개동산 예가원을 세운 장본인이다.


# 거여동에 세운 장애인들의 안식처


1986년 12월 27일 총회 신학생 시절, 그는 장애인을 위한 사명의 걸음마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수술이 잘못돼 자신의 몸조차 맘대로 움직일 수 없었지만, 죽음 가운데 하나님을 만난 정목사는 고비마다 하나님을 붙잡고 일어섰다.


많은 연단 가운데 비로소 자신을 사랑하게 됐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게 됐을 때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신학생을 걷게 됐다. 33살에 신학을 시작한 만학도로 공부하기에도 바빴지만, 자신과 같은 형편에 있는 장애인을 위한 사역을 소명으로 삼았다. 산업재해를 입은 장애자 5명을 데리고 무지개 선교원을 세웠다. 비록 공동 화장실과 공동 수도를 사용해야 하는 열악한 곳이었지만, 버려진 장애인들에게는 거친 비바람을 막아주고 따뜻한 음식을 제공해 주는 안식처였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돌보며 사랑을 실천하는 정목사의 이야기는 금세 퍼져나갔다. 인근 교회목사, 지인들을 통해 공동체의 식구가 하나 둘씩 늘어났다.


“공동체 생활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지체 장애자들이 생활하기에 어려움이 많았지요. 재래식 화장실 바닥에 신문을 깔고 주저앉아 볼일을 봐야 하기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리 현상을 해결하는 것조차 큰일이었죠.”


워낙 대식구다 보니 수돗물을 많이 쓴다는 타박은 예사고, 음식을 잘 흘리고 콧물을 안 닦아 지저분하다는 구박을 받기도 일쑤였다. 그들의 ‘아빠’이기를 자처한 정권목사는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불편한 몸으로 화장지를 팔러 다녔다. 때로는 가락시장에서 시래기를 주워다가 식사를 해결해야 했다.


6년간 일반 주민들과 함께 불편한 생활을 한 뒤 바로 옆 동네인 거여동 186번지로 이사를 할 수 있었다. 한 집에 같이 세 들어 살던 이웃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독립된 집이기에 서러운 눈칫밥살이를 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지금의 분당에 자리를 잡게 됐다.


# 기도 위에 세워진 보금자리


가진 것 없는 그들이 조금이나마 거주지를 넓혀가고,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들이 가진 기도의 은사 덕분이었다.


“하염없이 기도하게 하셨어요. 기도로 이끌어온 사역이지요.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그 때 그 때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외면치 않으셨습니다. 기도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무지개동산은 없었을 것입니다.”


5명에서 시작돼 어느덧 50명을 넘은 무지개선교회 가족들을 위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야했다. 그동안 주변 이들의 크고 작은 도움과 자원봉사로 살아 왔지만, 그들에게 좀더 안정적이고, 전문적인 공간을 세워줘야 했다. 전국 곳곳을 돌며 공간을 물색했다.


“요즘엔 워낙 복지관이 많이 세워져 있어 정부에서 쉽게 허가를 내주지 않아요. 거의 3년 동안 시설을 찾아다녔죠. 다른 곳엔 복지 시설이 많았는데, 마침 성남에는 한 곳 밖에 없었지요. 당시 한창 분당지구가 개발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장소까지 물색해 주셨습니다. 물질적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개미 후원자들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 터를 잡을 수 있게 됐습니다.” 


때문에 무지개동산은 매일 아침을 예배로 시작한다. 수요기도회, 주일 예배에도 그들이 주도해나가며 찬양인도를 하고 적극적으로 예배에 참여한다. 매일 저녁에는 자원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을 위한 기도회도 진행하고 있다.


# 동아리 활동으로 사회성 높여


누구보다 장애인의 불편과 어려움을 잘 아는 정권목사는 작은 것 하나에도 소홀치 않았다. ‘무지개동산 예가원’으로 새 삶을 시작한 53명의 가족들은 대부분 18세 이상의 지적·복합 장애자들이다.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성인으로서 각자의 삶도 분명 존중돼야 한다.


“모두들 가정을 이루고 싶고, 결혼하고 싶은 욕구 등 기본적인 사람의 욕구를 다 느끼게 됩니다. 가능하면 모두들 가정을 꾸리도록 돕고 각자의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지만, 아직은 여러모로 어려움을 느낍니다.”


당장 새로운 공간을 마련해 줄 수는 없지만, 무지개동산 안에서만이라도 그들의 개인적인 삶을 존중해주고파 애초 건축자체를 아파트 형식으로 준비했다. 각 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실형식의 공동 공간이 있고 양쪽으로 두 개의 방이 마련돼 있다. 개별 공간에 옷장, 화장실도 따로 구비해뒀다.


뿐만 아니다. 장애인들에게 일반인과 똑같은 아니 그 이상의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의료, 직업, 사회심리 영역 등의 전문적 재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서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의 성실한 사회성원으로 통합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도 무지개동산 예가원의 몫이다.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사랑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해 가는데 각자의 필요를 충족시켜 자존감, 평등사상, 정직, 용서, 화해 등을 학습하며 성경적 재활복지를 이뤄간다.


“시설 내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취미와 선호도에 맞춰 여가 생활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1개 이상의 동아리에 소속돼 활동하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산책 및 기초체력단련훈련을 할 수 있는 ‘트래킹 동아리’, 물 속 자유로운 움직임을 유도해 개인 의지를 표출하도록 돕는 ‘수영’, 자원봉사자와 함께 인라인 스케이트를 배울 수 있는 취미놀이 활동, 관람 뿐 아니라 공공기관에서 알아야 할 규칙학습을 연극, 영화로 배울 수 있는 ‘연극·영화 동아리’ 활동에 참여한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리듬을 익히고 악기 연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기악합주’, 전문 강사의 지도를 통해 작품을 만들고 성취감 얻을 수 있는 ‘미술 공예’ 등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 지역사회와 더불어 살기


이중 난타연주 프로그램 ‘레인보우 두들소리’는 그들에게 취미 그 이상의 성취감을 마련해 준 성공적인 프로그램으로 인정받고 있다.


“좁은 공간에서 스트레스 풀 수 있는 취미생활을 고민하다가 난타를 알게 됐어요. 7명의 지적장애인들로 구성돼 있는데 지금은 일본, 미국으로 초청공연까지 다니게 됐어요.”


난타 연주는 개인의 기량도 중요하지만 팀원간의 호흡이 더 중요하다. 레인보우 두들소리의 팀원들은 이를 위해 매일 하루에 4시간씩 연습한다. 함께 할 수 있고, 연주하는 자신이나 공연을 즐기는 이들에게까지 기쁨을 줄 수 있기에 이들은 더욱 행복감을 느낀다.


“지금은 카네이션 만들기에 그치고 있지만, 그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직업재활프로그램도 꾸준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 십시일반 도움의 손길 기다려


그러나 정권목사의 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에 대한 관심은 지역사회로 이어졌다. 재활의 기회가 없는 지역사회 재가 장애인들을 위해 ‘장애인 희망의 학교’를 운영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또한 자원봉사자와 후원자의 날을 마련해 그들이 직접 준비한 공연을 선보이며, 기도의 시간을 갖는다. 도움을 큰 기쁨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다.


이들에게 작지만 깨끗한 공간을 마련해 줄 수 있어 행복하다는 정목사에게는 요즘 고민이 생겼다. 성인 장애자들이 분당으로 나오면서 거여동에 조건부신고시설인 무지개 재활원을 세워 18세 이하의 장애아동들을 돌봐왔다. 그런데 재개발지역으로 선정되면서 그곳을 쫓겨나오게 됐다.


“집주인이 임대료를 1억이나 올려달래요. 주변의 도움으로 힘들게 살아왔는데, 갑자기 1억이 있겠어요. 결국 교육관으로 사용하던 곳에서 장애아동들이 어렵게 생활하고 있지요.”


장애아동 22명으로 수용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보일러를 놓고 급한대로 잠자리를 마련했지만, 세탁실, 물리치료실, 집단 활동시설 등 기본적인 시설이 시급한 실정이다.


“다행이 마천동에 근린상가시설을 임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세금까지 모두 지불한 상태에서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지요. 다시 수소문 끝에 수지에 공간을 마련하고, 건축허가까지 난 상태입니다. 하지만 건축비용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예요.”

기도하며 하나님이 주실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정권 목사. 그는 그저 벽돌 한 장, 유리창 하나라도 감당할 수 있는 도움의 손길을 통해 장애아동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했다.      

 


“내 남은 모든 것 주님 위해 쓰렵니다”

인터뷰 - 예가원 원장 정  권  목사

“이 땅의 480만 장애인들을 믿음과 사랑으로 깨워야합니다. 복음을 가지지 못한 이들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분명 그들을 통해 계획하신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계획을 볼 수 있도록 도와야지요.”


가족이 없거나 기초생활수급자로 혼자서는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들을 섬기며 장애인들의 복음화를 위해 앞장서고 있는 정권 목사. 그는 바닥에 앉지도 못하고, 고개를 좌우로 움직일 수도 없는 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또 다른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다.


학창시절 육군사관생도를 꿈꾸며 운동을 했던 정목사. 그는 입시를 앞두고 고관절 이상으로 수술을 하게 됐다.


“당시 운동을 정말 열심히 했었는데, 그게 오히려 탈이 났는지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고관절을 평생 못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입시가 코앞이었는데, 육사는 신체검사가 기본이라 부랴부랴 수술을 하게 됐지요.”


그런데 하루 이틀이 지나도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무릎관절까지 부어오르더니 온 몸의 관절이란 관절은 모두 작동이 시원찮게 됐다. 결국 그는 육사의 꿈을 접어야 했다. 언제 나을지도 모르는 암담한 투병생활을 견디지 못한 그는 자살까지 결심했다.


“그때 암흑 가운데 한 줄기 빛처럼 하나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당시 동네에 교회 개척을 앞두고 몇 몇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저도 그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교회 개척에 희망을 갖게 됐지요.”


당시 그 누구보다 절실했기에, 자신에게 남은 건 오직 하나님뿐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활동했다. 그런데 몸은 점점 더 심각해져만 갔다.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가르치는데 제 모습이 본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고 기도하기 시작했지요.”


교회의 모든 사역을 내려놓고 기도원에 올라갔다. 3일, 7일, 10일 아무리 금식해도 하나님은 쉽게 응답해 주시지 않았다.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자 결국 하나님이 자신을 버리셨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좌절감을 맛보았다.


“성경책도 기도도 뒤로 한 채 기도원 방에 누워있었는데, 옆방에서 도움을 요청해 왔습니다. 그 방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는데, 귀신 들린 환자를 위해 기도의 힘을 모아달라더군요. 마지막으로 남을 돕고자 한 것이 오히려 제 자신을 살리는 길이 됐지요. 그 과정을 통해서 힘을 얻을 수 있었고, 다시 열심히 기도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불편한 몸으로 산에 오르내리며 기도하던 중 갑작스레 내린 비로 오갈 수 없는 상황. 그는 비를 맞은 채 기도하기 시작했고, 비몽사몽간에 하늘 문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됐다.


“아직도 나에게 남은 인생, 생명, 건강이 있다면 그걸 모두 줄 수 있겠냐고 물으셨어요. 그때까지 다 잃었다고만 생각했는데, 하나님께서 제가 남은 것들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 순간 휠체어 타고서라도 주님 원하시면 기쁨으로 하겠다고 서원했지요. 그 후 또 한번 ‘입 돌아감’의 경험을 통해 감사할 수 있는 삶까지 주셨지요.”

그 후 그는 선교의 비전을 갖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다행히 총신 신학(현 기독신학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었고, 3학년 무렵 장애인을 섬기기 위핸 무지개선교회를 설립했다. 


“이제 매일 아침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도 내 남은 생명, 내 남은 건강 모두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기도를 하지요.”


하나님을 위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장애인들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는 정권목사. 그는 현재 척추관절, 목관절까지 마비가 오고 시력도 서서히 희미해져가고 있지만,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남은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 쓰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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