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콘텐츠로 구 소련 고려인 선교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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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로 구 소련 고려인 선교 모색
  • 공종은
  • 승인 2007.12.1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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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대학교 BK 21 기독교문화 콘텐츠 심포지엄

임영상 교수, 문화코드 이용한 선교방안 제시

문화예술캠프·한국문화예술센터 등 공동 개최


백석대학교 BK 21 기독교문화 콘텐츠가 최근 백석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구 소련 고려인 선교와 문화콘텐츠’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 이들의 선교 방안으로 활용될 문화콘텐츠에 대해 연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심포지엄에서 임영상 교수(외국어대학교)는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은 1860년대 연해주에서 시작된 조선의 유이민들로서 1917년 볼세비키혁명 이후 내전기를 거쳐 1922년부터 소련의 전 영역에 흩어져 살게 됐으며, 1937년부터 1938년 사이에 대대적으로 단행된 강제 이주정책으로 인해 수십 만의 고려인이 중앙아시아 국가에 남게 됐고, 1953년 스탈린의 사망 이후부터 1991년 소련 붕괴 이전까지는 중앙아시아뿐만 아니라 소련 전역에 걸쳐 이주와 정착이 허용돼 퍼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들은 고등교육에 열정을 쏟으며 유라시아 각지의 주요 도시로 확산됐다고 말했다.


1991년 소비에트 붕괴 이후 고려인들은 공화국의 독립과 자국민 및 자국어 우선 정책들로 인해 그 정체성이 불안정하게 됐고 따라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땅으로 다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연해주 한인들의 교육열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임 교수는 “러시아정교회 교회를 통해 1880년 대 조선어 교재로 가르치는 학교를 건립한 것을 시작으로 해서 이루어졌으며, 한인들의 주된 업종이었던 벼농사가 극동지역 전역으로 확산됐고, 이는 러시아 경제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언론활동에 대해서도 1923년 ‘선봉’이라는 신문이 창간됐으며, ‘레닌기치’를 통해 한인사회의 공연예술과 문학 및 문화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또한 공연예술분야에서는 ‘고려극장’을 통해 한민족의 문화를 널리 알렸다.


임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고려인들은 1989년의 인구조사 결과 러시아에 11만 명, 카자흐스탄에 10만5천 명, 우즈베키스탄에 16만1천 명, 키르키즈스탄에 1만9천 명, 타지키스탄에 1만3천5백 명, 우크라이나에 8천 명 정도가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려인들은 그러나 소련 해체 이후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으며 자민족 중심주의의 경향으로 인해 소비에트의 주류에서 소수자로 전락했고, 한인 선교사를 통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고, 한국 방문의 기회와 일자리를 얻는 등의 실제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회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고려인들은 문화적으로는 한민족과 러시아, 거기에 중앙아시아의 문화가 혼합되어 있는 형태이고, 신앙도 개신교 교회의 특징과 이해를 새롭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또한 “고려인들을 위한 선교가 문화콘텐츠를 통해서 청소년들에게 접근할 때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어린이들을 위한 ‘문화예술캠프’를 연다든지, ‘한국 문화 정보센터’를 설치해 운영할 수도 있고, 한국과 중앙아시아 고려인 사회가 ‘청소년 영상 캠프’ 등을 공동으로 개최해 기술을 전수해 주거나, 더 나아가 그들이 문화콘텐츠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직업인이 되도록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제시했다.


임 교수는 “이 일을 위해서 한국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적극적으로 헌신할 때 문화콘텐츠를 통한 하나님의 선한 사역이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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