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卞申)의 변신(變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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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卞申)의 변신(變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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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1.0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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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찬목사<초동교회>


아프가니스탄 사건이 19명의 살아남아 있던 피랍자들이 정부의 신속한(?) 협상으로 풀려나면서 국민들의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질 때, “이젠 신문은 무슨 재미로 살까?”하였는데, 신문은 연일 신바람(?)내며 변(卞)양균 씨와 신(申)정아 씨의 이야기로 즐겁기만(?) 하다.


시작은 신정아 씨의 학력위조였다. 일파만파(一波萬波)라고 회리바람처럼 사회 구석구석을 가짜 소동으로 휘몰아치더니, 바람이 휘몰아치고 지나간 자리에 벌거벗겨져 나오는 진실의 꼴이 가관(?)이다.


어떻게 보면 ‘한 능력 있는 여교수가 광주 비엔날레 예술 감독에 선임되었구나.’ 하는 정도의 인사 보도로 그칠 수 있었다.


그런데 기자는 이 장면에서 본능적으로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무엇인가 구린 냄새가 풍긴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그리고 고구마 밭을 파듯이 파들어 갔다.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국민은 변신(卞申) 두 사람의 변신(變身)에 속아 넘어가고 말았을 것이다. 아니, 이런 엄청난 일들이 청와대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국고가 악용된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도 모른 채 세금을 꼬박꼬박 내며 살아갈 것이다.


두 사람에 대한 영장을 청구한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변 씨가 신 씨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국고를 손실하고 기업체에 압력을 행사하는 등 자신의 신분을 남용한 사건으로 요약할 수 있다.”라 했다. 물론 이 표현 속에는 다 말하지 못할 사정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은 권력을 쥔 사람들이 공직의 힘을 오용하여 부적절한 변신에 활용하고 있음을 알고 있고, 잘못된 관행을 고칠 것이라는 기대를 거의 포기(?)하고 있다. 과연 이대로 두고 보고만 있어야 할까? 어떤 대책은 없는 것일까?


10월 19일 경북 문경 봉암사 결사(結社) 60주년 기념 법회가 있었다. 봉암사 결사(結社)는 조선불교가 일제 36년을 거치면서 왜색(倭色)에 물들어 있을 때, 왜색(倭色)을 벗겨내고 한국불교의 본래의 모습을 재정립하려는 “뜻을 같이한 스님들이 모인 수행모임(結社)”이다. 이 날 1만여 명이 모여 쏟아지는 가을비를 맞으며 “부처님 법(法)대로 살자.”라 했다. 법회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참회와 자성”이었다. 변신의 사건으로 빚어진 불교계의 잡음에 대한 반성의 자리였다. “한 사발의 맑은 죽이 씀바귀처럼 쓰고, 한 가닥의 엷은 가사는 태산처럼 무겁기만 합니다.”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결사 정신을 계승하지 못하고 본분을 망각한 허물을 깊이 참회합니다.”라고 부끄러워했다.


한 때 가톨릭에서는 사회의 부패와 타락에 대하여 “내 탓이요”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개신교도 어떤 부정적인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자주 회개운동을 펼친다. 그러나 홍보용이며 일회성의 선언적인 참회와 회개로만 머물러서는 능력이 되지 못한다. 참회에 따른 정의롭게 사는 운동이 생활 속에서 이어져야만 한다.


보라! 이 사회는 종교계의 회개와 참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패하고, 사람들은 권력의 자리에만 앉으면 교묘하게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속이며 악한 모습으로 변신(變身)하려 한다. 이 변신을 막는 한 방법을 조선시대에서 얻는다. 일벌백계(一罰百戒)의 방법으로 “매우 심하게 곤장을 쳐라!”.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결단이 이 나라를 부패공화국의 오명을 벗게 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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