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대표<평화네트워크>
다음으로 남북관계 수준에서는 한편으로는 남측과 북측 사이의 교류협력이 크게 신장되고 통일논의도 보다 활성화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관계가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시험대에 오른다는 의미는 그동안 남북관계의 저발전과 주변정세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유보되어왔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다는 부담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남북관계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북방한계선(NLL) 문제, 군사적 신뢰구축 및 군축 문제, 남측의 국가보안법 및 헌법의 영토조항과 북측의 노동당 규약 등 상호간의 적대적인 법률과 제도의 문제,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를 비롯한 남북한 사이의 인도주의 및 북한의 인권 문제 등이 그것들이다. 이들 문제가 지금부터 하나씩 개선되면서 북미관계 정상화 등 한반도 근본문제 해결과 병행된다면 남북관계 역시 크게 발전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남북관계의 혼란은 피하기 힘들 것이다.
세 번째는 북한 내부의 수준이다. 북ㆍ미관계 정상화를 비롯한 한반도 냉전구조의 청산은 북한에게도 커다란 기회이자 근본적인 도전을 동시에 가져다 줄 것이다. 기회의 측면에서 볼 때, 북한은 외부의 지원을 기초로 한 경제협력 수준을 크게 높일 수 있어 극심한 경제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반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개혁ㆍ개방과 병행되어야 하고, 이는 북한 주민이 외부세계와 접촉하는 수준의 상승까지 동반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체제 불안 요인을 동시에 안고 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북한 정권이 우리식 사회주의, 반미제국주의, 선군정치 등 핵심적인 이데올로기가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체제 불안 요인을 동시에 안고 있다. 냉전구조의 해체와 개혁ㆍ개방은 이러한 기존 이데올로기들과 양립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북한 정권은 이들을 대체할 새로운 통치 이데올로기를 찾아야 하는 부담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기는 시기적으로 김정일의 후계체제의 가시화와 맞물려 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김정일 위원장이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줘 3대 세습으로 나아간다면 기존 체제와의 연속성은 일정부분 담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국제사회의 비난은 물론이고, 변화된 환경과 조건에 부합하는 체제 이행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는 근본적인 한계를 갖는다.
물론 위의 네 가지 층위에서의 변화는 서로 독립되어 있다기보다는 상호간의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게 될 것이고, 이는 네 층위의 부분들의 합 이상의 구조적 변화를 수반하게 될 것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 사이의 패권경쟁이나 미일동맹 대 중러 협력체제 사이의 세력균형 체제가 등장할 경우, 한반도 분단체제를 선호하는 국제질서가 탄생할 수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