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비하적 체념론 팽배로 ‘자신감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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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비하적 체념론 팽배로 ‘자신감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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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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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관교수<서울대학교>


우리가
전할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도 외교와 국제정치를 알아야 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오늘날처럼 세계를 상대로 활동하고 살아가는 세계화 시대에, 세계 11 경제력을 갖고 있는 한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더욱 그렇다.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우리는 지금 탈레반에게 납치되어 고통 받고 있는 우리 젊은 형제자매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석방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그들이 아프간 땅에 뿌린 순결한 사랑의 씨앗은 언젠가는 분명히 풍성한 결실을 맺으리라고 생각한다. 마치 1세기 선교사들이 고통 받는 조선에 와서 뿌린 복음의 씨앗이 결실을 맺어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장했던 것처럼


그러나
우리가 사건 때문에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가운데서도 사건이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아야 같다. 아마도 마태복음 10 16절에서 실마리를 찾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거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복음을 땅에 전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비둘기 같은 순결한 마음뿐만 아니라 같은 지혜를 가져야 된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과 국제정치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치밀하게 연구해야만 하는 것이다. 국제정치학은 단순히 세상 학문이라고 치부해버릴 것이 아니라 바로 복음 전파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경제력 11위에까지 도달했다고 하면서도 외교문제들을 바라보는데 있어서는 한편으로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고 자신감을 상실하거나 때로는 자기비하적인 시각까지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1980년대에 한국에서 풍미했던 종속이론적 시각, 강대국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만다는 식의 체념적 권력정치론,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자기비하적 시각이 우리 의식의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그러한
자세로는 결코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주도해서 풀어나갈 수가 없다. 주변국들에 비해 국력은 상대적으로 작더라도 현명하고 신중한 전략과 세계사회에서 통용되는 보편적 가치와 세계여론에 우리가 지향하는 평화와 통일이라는 목표를 연계시킴으로써 한반도의 미래를 충분히 주도해나갈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체념론이나 자기비하적 시각은 그러한 모색을 시도할 동기유인마저 느끼지 못하도록 우리의 의식을 마비시켜버릴 수가 있다.


이러한
자기비하적 체념론은 나아가 모든 국제관계, 외교를 피해의식을 가지고 바라보게 만들면서 감성주의적, 국수주의적 대응을 낳게 위험이 있다. 어차피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상, 국가에게 국제관계의 공백이란 있을 없다. 국제관계란 피해나가야 대상이 아니라 어떻게 전략적으로 설정하고 관리해나가야 것이냐의 대상일 뿐이다. 우리 국가이익의 관점에서 주변 국가들과 어떠한 관계를 설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목표를 달성하는데 가장 유리할 것이냐를 철저하게 계산해서 외교를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주도해 나가겠다는 주도적 의식을 우리 스스로 가진다는 대전제하에 우리가 생각해야 될 점은 어떤 것이 가장 신중하고 현명한 외교 전략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와 세계사회에서 존중받는 가치의 실현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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