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노출문화는 세계적이다. 세계 도처가 발가벗는 것이 유행이다. 이러한 발가벗는 문화는 종말문화다. 성경문화는 나체를 드러내지 않는 문화다. 계단을 오를 때도 보이지 않게 조심하라고 하였다. 이 말씀 가운데에는 남의 나체를 보지 말라는 뜻도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노출문화가 점점 더해 간다.
노출문화를 꺼리는 이유는 일시적인 감정유발이나 이성적 흥분을 줄 수 있으며 동성애를 자극할 수도 있다. 특히 여름철에는 이런 노출문화에서 오는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요사이 더 문제되는 것은 정치판이나 경제, 외교 등 전 영역에 걸쳐 나타나는 투명노출, 위장 노출 등에서 오는 폐단이다. 너무 투명한 사회가 되어서도 살 수 없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어떤 단체든 각기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비밀이 있다. 이것은 공개해도 안되고 공개를 강요하거나 투명성 확보라는 이름으로 물리적 수단으로 압력을 넣어도 안 된다.
대선 총선을 앞둔 정치판은 가관이다. 수년동안 검증할 있는 기회가 그렇게 많았으나 어렵지 않게 지내오다 요사이 급작스럽게 검증이라는 바람이 정계의 큰 관심사로 되었으며 모든 언론들이 총동원하여 야단이니 윤리적으로 볼 때 검증의 주체기구가 검증을 받아야 할 형편이다.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 그러나 모든 결과가 진실이 아닌 것이 진실한 것으로 오인되어 잘못된 결과를 도출한다면 이 잘못된 피해는 고스란히 나라와 국민들의 피해로 돌아간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적나라하게 직고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이 노출문화로 공명선거에 오히려 저해가 될 정도로 난장판이다. 할 말 못 할말 검증에 대해서도 말할 입장과 안 했으면 하는 입장에 관계없이 떠든다. 이해하고 넘어갈 문제도 이해할 수 없는 큰 사건같이 만들어진다.
이제 앞으로 여권의 국민대통합의 대선후보까지 겹치게 될 때 일어날 상상을 하면 아찔하다. 어찌 한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이런 식으로 되어가는지 모르겠다. 많은 국민들은 씨름판의 구경꾼같이 남의 일이다. 단조롭게 관전할 뿐이며 선거에도 참여치 않는 사람도 많다. 좀 더 긍정적인 정책검증과 기본적인 도덕성 검증에 치중한 공명선거의 요식이 되었으면 한다.
특히 한국교회는 이런 일에 앞장서서 바른 설득자가 되어야 하며 하나님께 기도로 바른 나라의 지도자를 뽑게 해 주시옵서소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라의 잘못된 노출문화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