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사회’에 대한 거시적 안목의 합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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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사회’에 대한 거시적 안목의 합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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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3.0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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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구박사<시사평론가>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편리”한 것에 대해 저항하지 못하는 취약한 사회가 되었다. 보다 편리해지기 위해 더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고, 소유하고, 그리고 남과 경쟁해 왔다. 그러나 “편리한 것을 얻기 위한 경쟁”은 필연적으로 타자를 불편하게 한다. 내가 더 많이 갖고 소비하기 위해서 경쟁에서 밀린 사회적 약자나 소외계층 뿐 아니라 착취의 대상이 되어 버린 자연까지도 불편하게 한다. 그리고 과연 이 편리한 것을 얻기 위한 경쟁은 언제까지 가능한 것일까?


사회 양극화가 한 사회의 민주주의를 형해화 시키고 있는 사회에서는 통상 3가지 시민적 요구가 나타난다. 1) 사회적 안정성과 2) 생태적 건강성, 그리고 3) 시장으로부터, 또는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적 통상 압력으로 부터의 국가적 자주성이 그것이다.(Schumann/Martin)


이를 한국 상황에 대입시켜 보면 다음 몇 가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합의가 필요하다.


첫째, “일자리 창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제 일자리는 나누는 것이다. “밥은 하늘이요, 밥과 하늘은 나누는 것”이라는 한 시인의 지적은 오늘날 바로 “일자리”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이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다소 불편한” 것에 익숙해지는 합의가 필요하다. 남보다 더 많이 갖고 소비하기 위해 살아가기 보다는 “더불어 나누고”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합의가 필요한 데 이것은 구체적으로 노-사 모두에 적용되어야 한다. 기업가들은 이윤 못지않게 사회적 안정성이 생산성의 주요한 기반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구조 조정” 보다는 “고용 안정”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이쯤에서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에도 한번 눈을 돌려 보면 좋겠다. 한국 교회 자신은 이렇게 물신화되어 가는 현실에 어느 정도나 실천적으로 저항하고 있는지, “불편한 사회”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 낼 수 있는지에 관해서 말이다.


둘째,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 자신 기업가이며 생태운동가인 폴 호켄은 오늘날 전 지구적 범위에서 급속하게 파괴되어 가고 있는 생태계의 심각성을 생각할 때, 개인적 차원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거나 분리 수거에 협조하는 등의 실천만으로 환경 문제에 대처할 수 없다고 한다. 이는 마치 기울어 가는 타이타닉 호에 스며드는 물을 티스푼으로 퍼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도 한다. 결국은 기업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생태계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의 기업 활동이다.


지구 온난화 등의 지구 환경 문제는 이제 G8이나 다보스 포럼, 유엔 등의 주요 의제가 되어 있지만 시민운동 차원에서도 삶의 방식을 바꾸는 논의, “좀 더 불편한 사회”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셋째, 민족 공동체 유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통일 정책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내부에 서로 대립되는 의견들이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북과의 민족 공동체가 유지되어야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을 수 있고, 서로를 견제하기 위한 불필요한 민족 역량 소진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이웃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는 불편함에도 익숙해 져야 할 것이다. 나의 양지가 남의 그늘이 되지 않도록, 조금은 불편한 것에 익숙해 질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에 대한 많은 이들의 합의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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