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키 마운틴(smoky moun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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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키 마운틴(smoky moun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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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2.2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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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핵집목사<열림교회>


얼마 전 필리핀을 다녀왔다. 필리핀을 방문한 호주 팀과 합류하여 스모키 마운틴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처음 필리핀을 방문했기에 스모키 마운틴이 필리핀의 화산지역 어딘가에 있는 온천지대인 줄 알았다.


스모키 마운틴은 직역하면 ‘연기 나는 산’ 인데 늘 연기가 피어오르는 쓰레기 처리장이었다.


돌아오는 마지막날 스모키 마운틴을  방문하기에 호텔에 짐을 맡겨 놓고 그곳으로 출발했다. 안내하시는 분들을 따라 스모키 마운틴에 도착하여 봉고 차의 문을 여는 순간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름 그대로 쓰레기 타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사람들이 그 속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차에서 내려 주변을 보니 파리 떼들이 우글거리고 차마 사람들이 살 곳이 못된다고 생각했다. 우리 일행은 스모키 마운틴의 주민들의 거주지역으로 들어갔다. 쓰레기장에 버려진 나무 조각들로 얼키설키 집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좁은 통로를 통해 스모키 마운틴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약3000세대가 살고 있었다. 주거 공간이랄 수 없는 집 없는 사람들이 쓰레기 더미에서 쓰레기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였다. 우리나라에도 지금은 공원이 되었지만 난지도가 있었다. 서울에서 내다 버리는 쓰레기 더미에서 삶을 이어가는 그런 공간이었다.


스모키 마운틴을 돌아보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집이 없어  갈 곳이 없어 쓰레기 더미에서 살고 있지만 그들 나름대로 삶의 규칙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쓰다 버린 쓰레기들을 조금이라도 쓸 수 있는 것들은 그들의 손에서 다시 쓸 것으로 재생산 되는 모습을 보았다. 버려진 나무들은 모두 주워 다가 땅을 파서 가마를 만들어 숯을 생산해 내다 팔고 있었다. 이미 만들어진 숯덩이들이 가마니에 담겨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 나름대로 삶의 방식이 있었다. 쓰레기차가 들어오면 돈이 될만한 물건들은 그들의 손을 거쳐 다시 재생산 되고 있었다. 소비문화 속에서 버리기에 익숙한 생활습관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들이 살고 있는 스모키 마운틴은 사람이 사는 것이라고 볼 수 없는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벌거벗고 온몸이 쓰레기와 타버린 재에 파묻혀 살고 있었다. 아이들의 장난감과 놀이터는 내다버린 쓰레기들이고 재로 덮여 있는 쓰레기 더미였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면서 가슴 한편으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필리핀은 오랜 독재를 하면서 부가 한쪽으로 치우치면서 극심한 양극화를 만들어 냈다. 사회의 양극화는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필리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국가가 책임져 주지 않는다. 자신 스스로가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와있다. 양극화는 사회의 피라밋 구조를 만들어 냈고 피라밋의 밑바닥에 살고 있는 이들의 고통을 생산하고 있다.


스모키 마운틴에서 피어오르는 쓰레기 연기와 함께 살면서도 정직하게 버린 것들을 다시 재생산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피어오르는 연기는 피라밋 구조의 밑바닥에 있는 이들의 기도의 향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직 성장만을 외치는 사회, 사회를 양극화로 가르는 사회는 어느 한쪽에서 계속해서 고통의  연기(기도)가 피어오를 수밖에 없다. 집으로 돌아와 옷을 벗으며 스모키 마운틴의 재로 얼룩진 다리를 보며 내내 우리 사회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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