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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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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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7.2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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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목사<서초교회>

얼마 전 우리나라 신문 방송에, 종교계와 관련된 공식적인 통계 숫자가 발표된 적이 있다. 로마 가톨릭이나 불교는 성장하는 추세인데, 개신교의 교세는 감소했다는 것이다.

숫자가 모든 것을 다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개신교의 교세가 감소한 것은 우리가 살아온 모든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우리의 부족한 많은 것들이 결국은 외적인 숫자의 감소로 나타났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의 교세가 성장 추세라지만, 그것이 성경적인 복음과 신앙에 있어서 내적인 성장이 일어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천주교회는 수직적인 체제가 잘 잡혀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 흐름에 신속히 적응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정치적인 모습마저 보이는 점을 생각할 때, 그들의 성장은 외적인 성장에 치우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저런 점들을 생각할 때, 신앙과 양심의 차원에서 내적인 진실의 차원에서 생각하면,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된다.

로마에 기독교 복음이 전해질 때, 그 때 로마제국은 서서히 쓰러져 가고 있었다. 최고의 강대국 로마는 자신의 힘과 몸집에 눌려서, 어느 나라가 공격을 해오지 않아도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막대한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엄청난 돈이 필요했고, 그 돈은 결국 백성들의 세금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온 천하에 인구 조사를 하고... 그 인구 조사에 떠밀려서 마리아와 요셉은 베들레헴으로 가고... 그런 과정에서 아기 예수께서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탄생하셨다. 정치 경제적인 판단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을 마굿간으로 내쫓은 나라가 로마라면, 그런 나라의 생명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당시에 로마 제국은 서서히 쓰러져 가는 중이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 복음이 전해진 것이 1800년대 말이다. 그런데 1900년대 초에 우리는 일제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니까 1800년대 말에 이 나라는 거의 다 쓰러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시기에 기독교 복음이 이 나라에 전파된 것이다.

로마를 생각하고 1800년대 말의 한국을 생각하면 기독교의 복음은 쓰러져가는 사람들에게 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쓰러져 가는 나라와 사람들에게 다가와서 그들을 다시 새롭게 일으키는 것이 복음의 역할이요 사명인 것이다.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무덤 속에 누우신 예수를 부활의 아침에 다시 일으킨 것이 복음이다.

그 비슷한 문제가 한국 교회에서도 일어난 것은 아닐까?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말씀을 보내셨는데 교회와 성도들에게서는 그런 열매가 나타나지 않고 그와는 정반대의 열매들이 나타난 것은 아닐까?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은혜를 거저 은혜로 주셨는데 우리에게서 나타난 열매는 행위와 공로 신앙이 아닌가?

우리가 공을 들여 기도하고 노력했더니 우리 교회에 한국 교회에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한 믿음이 어느새, 인간의 공로와 물질을 드려서 얻은 그런 것처럼 변하고 만 것이다.

어떤 은혜를 베풀어도 그것을 인간의 공로나 물질로 변질시키고 마는 그런 곳에서는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곳에서 개혁이 일어날 때 종교개혁자들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했다.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것에 대해서는 ‘거저 주셨다’고 말해야 한다. 왜 거저 주신 것을 가지고서 행위와 공로로 얻은 것처럼 말하는가.

한국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가 지속적으로 임하려면 우리는 은혜를 은혜답게 살려내야만 한다. 거저 받은 것에 대해서는 거저 받았다고 고백을 하고 인정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날 길은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살아나기를 기대한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이다.

교회의 중심에 서 있는 목회자와 성도들로부터 공로 의식이 물러서게 하는 것이다. 교회의 회복과 부흥을 위하여 기도한다면 바로 거기서부터 회개운동이 시작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우리 모두의 죄악의 결과라고 말하기 이전에 공로 의식이 쌓여 있는 곳에서부터 보다 더 진지한 회개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공로를 앞세우고 다니다가 길을 잃었던 영혼들이 이제는 은혜의 길로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한국 교회의 미래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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