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국내 성지순례(34) - 상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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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국내 성지순례(34) - 상동교회
  • 현승미
  • 승인 2006.01.17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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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독립운동 역사의 터전

상동교회는 이 나라 민족운동사의 핵인 애국독립운동 역사의 터전이다. 한국 최초의 여선교사 스크랜튼 대부인이 남대문 안에 병원과 약국을 설립할 목적으로 달성궁 터를 매입하여 약국(병원)과 예배실을 마련했다. 1888년 10월 9일 첫 예배를 드리게 됨으로 창립된 상동교회는 정동제일교회와는 달리 민족교회로 출발했으며 1900년 11월 29일 최초의 한인중심연회가 이곳에서 조직됐다. 이때 한국최초의 감리교 장로사인 스크랜튼 선교사가 초대 연회장으로 추대됐다.


예일대 출신의 의사로 어머니인 스크랜튼 대부인과 함께 한국에 온 스크랜튼 선교사는 정동에 시병원을 설립했고 상동에 교회당을 건립한 한국 최초의 감리교 장로사로 1900년 상동교회에서 중앙연회를 설립하고 초대 연회장이 됐다.


탁사 최병헌목사(사회)의 기록에 의하면 황성장로사 시란돈, 인천항 목사 조원시, 평양부 목사 노보을씨가 황성 달성당에서 회합하며 후에 신학을 수업한 경향 각지의 한인들로 대한인중앙전도회를 창설했다.


또한 상동교회 우국애국단체인 상동청년회(청년학원)와 공옥학교를 중심으로 민족운동에 헌신하는 인재를 양성했다. 스크랜튼에 이어 2대 담임으로 부임한 전덕기 목사를 중심으로 을사보호조약 반대 운동, 헤이크 밀사 사건이 추진됐고 신민회 105인 사건의 본거지로 지목되어 초기에 극심한 탄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상동청년회의 삼만(이승만, 정순만, 박용만)은 미국과 러시아에서 상동 3제(영제, 치제, 성제) 중 성제 이시영 형제를 중심으로 한 애국청년들이 중국에서 독립운동의 거점을 형성하는 등 상해임시정부 태동의 모태가 됐다.


그러나 상동교회는 일제 말기 총동부에 의해 민족정신을 말살하는 황도문화관으로 바뀌었고 최근에는 남대문시장의 핵심 상권에서 ‘새로나’ 백화점 교회로 새롭게 태어났다.


<성지순례 문의:2230-5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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