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57) 그릇된 메시야관의 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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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서(57) 그릇된 메시야관의 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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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0.1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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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자손이자 다윗의 주님

<김경진교수·천안대 기독신학대학원>
 

세 번의 연속적인 주님의 대적들(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시험과 도전을 멋지게 통과한 후, 이제는 주님이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신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마 22:42). 그 세 번의 질문은 적대자들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주님의 권위를 더욱 높이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 후 바리새인들에게 던지는 주님의 질문은 메시야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시정하려는 목적과 동시에 주님 자신의 신분과 소명을 깨닫게하려는 의도가 담기어져 있었다. 결과적으로 주님은 그 대적들의 시험을 통과하셨지만, 그들은 주님의 시험에 답변하지 못함으로써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스도에 대한 주님의 질문에 바리새인들을 포함하여 유대인들이 다윗의 자손이라고 답한 것은 충분히 당연한 일이다(마 22:42). 1세기 당시 유대인들은 다윗의 자손으로서 메시야를 정치적, 민족적, 군사적 의미로 이해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모든 원수들을 정복하고 온 세계를 다스리게끔 만들 인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이러한 견해를 시정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그들의 답변에 주님은 유대인들이 메시야를 가리키는 말씀으로 가장 자주 인용하고 있는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하여 역으로 질문을 던지셨다; “그러면 어찌하여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主)라 불렀느냐?” 는 것이다(마 22:45). 다시 말하면, 어떻게 다윗이 그 자신의 후손을 주라고 불렀겠느냐는 반문인 것이다.

주님의 이 질문의 결과는 메시야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즉 메시야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다윗의 주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주님이 다윗의 자손임을 부정하신 것은 아니고, 다윗 그 이상의 존재임을 가리키신 것이다(참고 12:6, 41). 물론 이전에 사람들은 주님을 메시야로서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다(마 20:30; 21:9).

그런데 여기서 주님은 메시야를 다윗의 자손으로 부르는 것이 충분치 않다고 지적하신다. 즉 메시야를 다윗의 왕족 후예로서 지상의 정복자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메시야는 또한 다윗의 주님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함을 지적하신 것이다. 요컨대 주님은 자신이 메시야로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선포하신 것이다.

주님의 이 선포는 매우 웅변적인 신적 주장으로써, 메시야에 대한 당대 유대인들의 그릇된 사고를 교정하고 있다. 즉 메시야를 더 이상 다윗 왕의 군사적 승리를 반복하는 지상 통치자의 개념으로서 아니라,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받아들일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유대인들은 왜 다윗이 자신의 후손을 “나의 주”라고 칭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대리자이시며 독생자이신 주님의 신비를 알 길이 없었으므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초자연적인 신적 성품과 신비를 간과한 채 인간적 범주에서 이해하려 하는 자들은 주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만다. 그러므로 복음서의 역사적 진정성을 부정하는 이들이 바로 오늘날의 바리새인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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