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 회개보다 도의적 책임만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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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회개보다 도의적 책임만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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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4.1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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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적 최책 고백’ 과연 바람직한가?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역사신학>


다 자기만 잘났다고 설치고, 자기는 다 잘했다고 억지를 쓰기까지 하는 오늘의 현실에서 그나마도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지도자들이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보도에 의하면 지난 8일 서울 도곡동의 강변교회에서 모인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주최 월례 발표회에서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3명의 원로인 강원용, 김창인, 조용기 목사가 각기 15분씩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잘못과 부덕을 고백했다고 한다.

설사 그것이 복음주의협의회가 기획하고 ‘초청’한 행사였다고 할지라도, 또 개인적인 죄책 고백이라기보다는 지도자로서의 도의적 책임에 대한 고백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의미 있는 행사였다고 생각한다.

위의 3분은 한국 교회에서 지명도가 높은 존경받는 어른들로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1960년대 이후 한국 교회 형성에 커다란 자취를 남기신 분들이고, 동시에 오늘의 한국 교회 현실을 어떻게 평가하든 일정 부분 책임을 공유하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공과가 있기 마련이고, 3명의 원로들도 물론 다 잘못한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자로서 공개적으로 “제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동양적 겸양지덕을 넘어서는 공개적 고백이라는 점에서 감동을 준다.

모름지기 진정한 신앙인은 외향적 비판에 앞서 내향적 성찰에 우선해야 하고, 남의 눈의 티끌을 보기 전에 자기 눈의 들보를 보는 겸비함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때로 이런 저런 일로 남을 비판하는 데 혈안이지만 정박 돌팔매를 맞아야 하는 고약한 놈은 다른 이가 아닌 내 자신이다. 이런 인식은 날마다 성화의 언덕으로 향해야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유익한 자성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어른들이 앞장서 “내 탓이다”고 말하는 것은 형식이야 어떠하던 간에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일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이후 소위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이름으로 개혁이 추진될 때도 한국복음주의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한국 교계 중진 인사 32명이 ‘두 전직 대통령의 불법 행위에 동조했던 책임을 통감하는’ 자성의 성명서를 발표한 일이 있었다.

이 성명서에서는 “불의와 불법에 항거한 교계 지도자가 있었던 반면 더 많은 개신교회 지도자들은 선지자적 사명을 다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묵시적으로 혹은 공개적으로 그들과 협조하기까지 했다”고 지적하고, “특히 우리들 가운데 몇몇 사람들이 5공 초기에 군부의 집권을 도운 결과를 가져오게 한 과오에 대해 공동으로 책임을 느끼며 국민과 교인들 앞에 깊이 사과한다”고 했다.

일제하에서 한국 교회는 민족의 고난을 양 어깨에 짊어지고 앞장서 걸어가는 의연함이 있었으나, 해방 후 이승만 정권 하에서나 전두환, 노태우 등 군사정권 하에서 떳떳치 못한 일들이 없지 않았다. 이런 점들에 대해 한국 교회와 지도자들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반성하는 일은 교회가 이 민족 앞에 신뢰받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 신뢰가 있어야 사회에 대한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고 도덕적 귀감을 줄 수 있다.

이번의 교계 원로들의 반성과 참회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세 명의 회개가 형식적이고 이벤트성의 행사가 아니냐는 것이 그것이다. 또 진솔한 개인적인 내면의 회개가 아니라 ‘도의적’ 책임에 대한 반성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점에 대해서까지 비판적으로 말하는 것은 공개적으로 “제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어른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혹시 그런 점이 있다면 그것은 개인이 해결해야 할 과제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자신의 가슴 속에 숨겨둔 비밀의 창고를 열어 제치고 날마다 정결한 영혼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회개를 공개적으로 할 것인가 하나님 앞에서 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개인이 선택할 일이다. 진정으로 회개할 때 성령 하나님은 한국 교회에 새로운 부흥과 갱신의 은혜를 부어주실 것이다.

1907년 민족의 어른이자 평양 장대현교회 장로(전도사)이기도 했던 길선주 씨가 사람 앞에 부끄러움 마다하지 않고 은밀한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비로움을 간구했던 그 회개가 1907년 이 강산을 부흥의 물결로 파도치게 만들었던 ‘대 부흥’의 시작이었음을 생각해 볼 때, 지도자 된 분들이 앞장서 진정으로 회개하는 일은 이 민족의 교회를 새롭게 하는 시작이 될 것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한국 교회가 새롭게 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람 앞에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는 순연한 회개와 반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지도자가 진정한 지도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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