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의 기도 끝에 아브라함 CD전집 선보인 김 정 임 집사
상태바
5년간의 기도 끝에 아브라함 CD전집 선보인 김 정 임 집사
  • 승인 2001.06.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말씀으로 얼룩진 아이들의 영혼이 맑아지길 바래요”

죄로 얼룩진 세상 속에서 꿈 많은 우리 청소년들이 바르게 자랐으면 좋겠어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흘러나오는 성경과 찬송을 들으면서 우리 아이들의 영혼이 때묻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수익이요? 그런 걸 기대했다면 5년 동안 이 일을 했겠어요? 벌써 돈 되는 일로 눈을 돌렸죠.” 5년에 걸쳐 95장의 아브라함 성경·찬송 CD를 제작한 김정임 집사(관악교회). 누구도 시키지 않았던 일이지만 자신의 자녀들이 집안에서 늘 흘러나오던 찬송가를 들으며 밝고 건강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아이들에게도 똑같은 기회를 주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아브라함 CD’를 생각해 냈다.

기업체도 아니고 한 개인이 1백 장에 가까운 CD를 제작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막대한 비용이 드는 힘든 작업이었지만 그녀는 의외로 담담하기 버텨냈다. 남편의 모진 핍박과 수 차례의 재정적인 절망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자식과 청소년들을 생각하며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교회용품을 제작·판매하는 지팡이사(社) 윤 집사를 만난 것도 큰 힘이 됐다. 신앙이 견고했던 교역자들이 모여 어려운 신학생과 교회를 돕기 위해 교회용품 사업에 뛰어든 지팡이사는 제작기간을 훨씬 초과해 부담스러웠지만 하나님을 향한 김 집사의 신실한 마음에 감동해 CD 제작을 전폭적으로 도왔다.

그러나 가장 큰 소득은 이 지루한 제작기간을 통해 김정임 집사는 “신앙은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일의 관계”라는 중요한 교훈을 깨달으며 한층 성숙한 믿음을 선물로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정임 집사의 이같은 절대적인 믿음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그 내면에는 자신을 교회로 인도하려고 안간힘을 썼던 친구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다.

십여년 전. 김 집사는 친구의 억척스런 권유로 교회 등록만 해놓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교회 가는 것을 피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주변 사람을 통해 그 친구가 자신을 위해 40일 철야기도를 작정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뭐라고 친구가 남편과 자녀, 편안한 잠자리를 뒤로한 채 성전에서 기도를 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뭐 특별한 것을 준다고 자신이 교회 가는 것을 소원하며 기도하는 것일까. 그래 나도 한번 가보자.’ 친구의 소망이 간절했던 탓인지 그녀는 드디어 교회에 출석하게 된다. 반신반의의 심정으로 한번 두번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던 김정임 집사는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믿음의 선배인 친구도 다른 곳으로 떠났지만 그녀는 인근에 있던 관악교회에서 새벽기도를 시작하면서 믿음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복음의 불모지였던 가정에서 혼자 교회를 다닌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독실한 불교집안이었던 가정환경 속에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모진 고통을 당해야 했고 양가 부모님에게도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그러던 중 김 집사가 남편과 시부모의 눈밖에 나는 결정적인 사건과 맞닥뜨리게 된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김 집사는 시댁 제사에 참석해 범상치 않은 체험을 하게 된다. 여느 때처럼 음식장만을 돕고 있었지만 그녀는 왠지 모를 섬뜩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느낌에 도무지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오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려고 안절부절하며 기다렸지만 쉽사리 오질 않았다.

결국 자정이 다 돼서야 만취가 되어 돌아온 남편을 보자마자 김 집사는 억눌렸던 감정을 폭발시켰고 시댁 어른들은 갑작스러운 김 집사의 행동에 경악했다. 그 이후 남편은 이날의 사건을 빌미로 이혼을 요구하며 김 집사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신앙생활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주일에 손님이 가장 많은 사우나라는 사업체 특성상 처음에는 수요일을 주일처럼 여기며 교회에 다녔다. 남편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차차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생기면서 자녀와 조카들에게 카운터를 맡기고 담대히 주일성수를 시작했지만 남편의 핍박은 천정부지였다. 그러나 믿음이 성장한 김 집사는 의연하게 버텼다. 남편은 이혼을 강요하며 폭언, 폭행을 예사롭게 행했지만 절대 반박하거나 맞서지 않았다. 그녀의 온전한 삶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모습을 전해주고 싶어서였다.

고통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김 집사는 이복형제를 키우는 짐도 짊어져야 했다. 자신의 배로 낳지 않은 첫째 아이. 배다른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힘든 경험을 했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 첫째를 헌신적으로 돌봤다. 내심 직접 나은 둘째 아이를 편애할까 하는 노파심에 첫째에게 맘과 정성을 다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정성이 남편에게도 전해졌던 것일까. 자녀들과 맘 편하게 교회만 다닐 수 있다면 이혼도 불사하겠다는 김 집사의 폭탄선언에 남편의 강퍅했던 마음은 녹아내렸고 아내의 신앙생활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교적만 등록한 남편은 아직까지 신앙생활을 등한시 하고 있지만 김 집사의 신앙생활에 관련된 일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대환영이다.

부흥회에 참석한다고 “목사 사랑하냐”며 핍박했던 때를 생각하면 실로 커다란 발전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들도 어려서부터 들었던 찬송과 성경말씀 탓인지 하나님 안에서 올곧은 신앙생활을 하며 세상의 때에 물들지 않고 착실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또한 더 없는 축복이라며 김 집사는 감사했다.

이제 5년간의 김정임 집사의 노력의 산물인 아브라함CD는 세상에 선을 보였다. 하나님께 헌신을 다짐하며 제작했기에 많이 팔리는 것에 별로 신경쓰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축복해주셔서 아브라함 CD의 수익금이 생긴다면 청소년들의 복지사업을 위해 투자할 생각이다. 이 땅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청소년에게 관심을 갖고 후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그녀의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서이다.

교회 계단을 내려오며 기자를 마중하는 김 집사에게는 알 수 없는 평온함이 베어나왔다. 예쁘장한 얼굴은 아니었지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기쁨 탓인지 너무도 화사했다.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한 일인데 무슨 취재거리가 되냐며 겸손해 하는 그녀의 모습 속에서 흡족해 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무모하리만큼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겠다고 나선 김정임 집사.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 헌신만 하면 복된 삶은 책임져 주신다’는 김정임 집사의 말을 거울삼아 기복신앙, 성장주의로 치닫으며 그 입지를 위협받고 있는 한국 교회들이 부흥의 활로를 회복했으면 한다.

김광오기자(kimko@ucn.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