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계시 수단의 정점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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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계시 수단의 정점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있다
  • 박찬호 교수(백석대 조직신학)
  • 승인 2023.09.1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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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교수의 목회현장에 꼭 필요한 조직신학_26) 특별계시의 정점

꽤 유명한 광고 카피 중에 “결론은 버킹검”이라는 말이 있다. 한 패션회사의 신사복 브랜드인 버킹검의 1980년 TV 광고에서 나온 표현이다. 워낙에 광고에서 히트했던 카피인지라 결론을 잘 내리지 못하고 왈가불가할 경우에 이런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 버킹검이라는 브랜드 자체는 남성 패션의 변화 속에서 판매량이 떨어지면서 결국 1997년에 생산을 중단하였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성경 66권 전체가 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구약성경은 오실 메시아에 대해 그리고 신약성경은 오신 메시아와 다시 오실 메시아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고 말씀하셨다.

특별계시의 수단에는 신현(theophanies)과 의사전달(communications) 그리고 기적(miracles) 이렇게 3가지가 있다. 그런데 이 3가지 특별계시의 수단들의 정점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자리하고 있다. 신현 중에 최고의 신현은 예수님의 성육신이다. 의사전달 중의 최고의 의사전달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이다. 그리고 기적 중의 기적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 가운에 오신 성육신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결론은 버킹검”이라는 카피와도 같이 성경의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의 모든 말씀들이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라고 요청하는 빌립에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라고 되묻고 계신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나타나 보이시는 경우들을 여럿 소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법궤 뚜껑 위 보좌에 앉아 계신 분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이 법궤는 때로 하나님의 전차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시 80:1)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시 99:1)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실 때에는 불(창 15:17)로, 모세에게 나타나실 때에는 떨기나무 불꽃(출 3:2)이나 빽빽한 구름(출 19:9, 16 이하)으로 자신의 임재를 나타내셨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였던 구름기둥도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출 33:9)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욥에게는 폭풍 가운데 자신을 나타내셨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욥 38:1)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일러 말씀하시되”(욥 40:6) 불의 선지자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세미한 바람 가운데 나타나셨다.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왕상 19:12)

구약 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을 직접 뵈면 죽는다는 속설 아닌 속설을 믿었던 듯하다.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삼손의 탄생에 대한 고지(告知)를 받고 아내에게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삿 13:22). 하지만 그의 아내는 말한다. 그럴 것이면 왜 하나님이 나타나 삼손의 탄생에 대한 소식을 알려주시고 자신들의 손에서 제사를 받았겠느냐는 것이다. 어쨌거나 죄인인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는 것은 두려운 경험일 것임에 분명하다.

누가복음 5장은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의 모습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게네사렛 호수가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에 오르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말씀을 마치시고는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라고 말씀하신다.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순종하였다. 그랬더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이때 베드로가 보인 반응은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였다. 아마도 베드로는 자신 앞에 계신 예수님을 통해 신성의 한 자락을 보았던 것 같다. 한 자락이 아니라 전체를 보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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