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 박사의 영화읽기]“부끄러워서…”
상태바
[최성수 박사의 영화읽기]“부끄러워서…”
  • 최성수 박사(문화선교연구원 칼럼니스트, 캄보디아 선교사)
  • 승인 2023.07.14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스토리>(민규동 감독, 2018, 드라마, 12세)

1932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군은 아시아태평양 전역에 군 위안소를 설치하고 강제로 끌려오거나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감언이설에 속아서 온 여성을 성노예로 삼고 성 착취를 일삼았다. 영화는 이런 배경에서 조선인으로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10인의 할머니들과 함께 13명의 일본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일본 정부를 상대로 1992년에서 1998년까지 6년간 총 23번의 재판 법정 투쟁을 벌인 시모노세키 재판을 다룬다.

이 재판의 목적은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 책임을 얻어 내는 것이었다.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고 가며 벌인 재판이라 해서 ‘관부재판’으로 불린다. 이 재판에서 13명의 변호인은 일본 헌법에 명시된 ‘도의적 국가로서의 의무’와 이 문구에 따른 판례를 근거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손해배상을 얻어 내려 했다.

당시 일본 정부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으로부터도 외면받는 상태에서 재판이 열렸다. 그런데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재판 사상 처음으로 국가적 배상 판결을 받아냈다는 점에서 당시 일본에 충격을 안겨 준 재판이었다. 비록 재판에서 승소하진 못했으나 일본 법정에 의해 원고의 주장이 일부 인정받았고 그에 따른 배상 판결을 얻어 냈다는 건 당시 동남아 11개국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전개한 재판에서 아무것도 얻어 내지 못한 사례와 비교하면 대단히 놀라운 결과였다.

영화 제목에 사용된 ‘허스토리(herstory)’라는 단어는 신조어이다. history를 his+story로 독해하는 민간어원 전통에 근거하여 역사 이해에서 남성 중심적이고 편파적인 시각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반영한다. 영화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문정숙은 직원이 자신도 모르게 추진한 일본인 관객을 상대로 하는 기생관광으로 인해 영업정지를 당한다.

이에 그녀는 이미지 쇄신이 필요하던 차에 친구의 제안에 따라 ‘위안부 및 정신대 피해자 신고센터’를 운영하게 되었다. 전국에서 쏟아지는 신고를 접수하고 할머니들을 만나 그녀들이 겪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는 일시적인 운영 계획을 철회하고 일본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결심을 한다.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려고 할 때, 그녀의 친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하느냐?’ 질문하는데, 이에 문 사장은 이렇게 대답한다. ‘부끄러워서, 나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게 부끄러워서…’

남들은 위안부를 매춘녀로 여겨 치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지만, 문 사장은 오히려 그녀들의 고통을 공감하면서 그동안 이런 할머니들의 사정을 외면하며 살았던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한 것이다. 같은 역사를 두고 나타난 두 가지 상반한 부끄러움은 영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으로 작용한다.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할머니들은 오히려 부끄러워할 장본인은 사람으로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 일본 정부라는 걸 힘껏 외쳤다. 배정길 할머니는 일본 법정에서 증언하면서 재판장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지금 기회를 줄게, 인간이 돼라’ 부끄러움을 알고 사과하란 외침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