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의 극단성 위험… 일반계시-특별계시 모두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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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의 극단성 위험… 일반계시-특별계시 모두 중요
  • 박찬호 교수 백석대
  • 승인 2023.07.13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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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교수의 목회현장에 꼭 필요한 조직신학 18) 일반계시의 가치와 불충분성
박찬호 목사
박찬호 목사(백석대 교수)

1914년에서 1918년까지 4년여에 걸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차 세계대전의 전범 국가였던 독일은 20여 년이 조금 지나 일본과 이탈리아와 함께 다시금 2차 세계대전의 주축 국가가 되었다. 나치에 의해 박해를 받았던 유명 인사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상대성 이론을 주장하였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일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서 막스 프랭크의 초청으로 베를린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유대인이었던 아인슈타인은 나치의 집권에 위협을 느끼게 되었고 1933년 결국 독일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였다.

1939년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함으로 유럽에서의 전쟁의 시작을 알렸고 일본은 1941년 12월 1일 일요일 아침 이른바 유명한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을 시작하였다.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 이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원인으로는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이 과도하게 독일에 전쟁 배상금을 물린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 1930년대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가 주도하던 나치(Nazi,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의 약칭)의 집권 과정은 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 보면 있어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자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 우리나라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기독교회는 대사회적인 영향력을 상실하며 위기감에 빠져 있었다. 이런 위기감에서 독일의 그리스도인들은 히틀러라고 하는 인물에게 열광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였던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독일 교회에서는 고백교회 운동이 발발하였는데 당시 독일에 거주하며 신학을 가르치고 있었던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는 스위스 사람이었지만 이들의 신학적인 후견인 노릇을 하였고 결국 독일에서 추방되었다. 이른바 바르멘 선언(1934년)이라고 하는 고백교회 선언문은 바르트의 신학을 강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할 유일한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이 바르멘 선언의 골자라고 할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황제가 아니라 예수가 주라고 고백하였다. 히틀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가 믿고 의지할 유일한 주님이시라고 하는 바르멘 선언과도 통하는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가 주시라”는 고백은 목숨을 담보하는 위험한 고백이었기에 믿음의 담력이 없이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회도 나치의 독일 교회처럼 일제강점기 시절 비슷한 유혹에 직면하였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였던 주기철 목사와 같은 분들은 순교의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말 한국교회에 소수나마 신사참배를 거부한 이들이 있었다는 것은 그 시대 한국교회의 영광이다.

사람의 생각은 극과 극으로 치우치기를 잘한다. 마치 진자(振子, pendulum)처럼 이쪽에서 저쪽 끝으로 양 극단을 오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어리석은 모습이다.

일반계시를 인정하는 것은 개혁주의신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부의 개혁주의신학자들은 일반계시를 부정한다. 대표적으로 칼 바르트는 자연신학의 가능성을 일축하기 위해 일반계시를 부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르트의 신학적인 위대함에 대해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지만 일반계시를 부정한 것은 바르트의 중요한 오류라고 할 수 있다. 히틀러의 나치가 득세하고 있던 당대의 정황 가운데서는 바르트의 주장을 일면적으로 잘못된 주장이라고 거부하기 어려운 면도 분명히 있지만 그럼에도 그가 끝까지 일반계시를 거부한 것은 바르트의 오류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반계시를 부정하게 되면 기독교 신앙 안에서 신학 이외의 일반 학문의 자리를 제대로 확보하기가 불가능해진다. 기독교 대학의 비전은 불가능하게 된다. 백석학원은 대한복음신학교로 시작하였고 신학 이외에 그 외연을 넓혀 기독교음악이나 보육과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천안 시대를 열면서 종합대학으로 우뚝 서게 되었으며 지금은 기독교 대학의 글로벌 리더로서의 웅비를 꿈꾸고 있다. 이 모든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할 수 있는데 신학적으로는 일반계시의 가치를 인정하는 입장이기에 가능하였던 일이다.

일반계시의 필요성과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반대극단의 주장도 조심해야 한다. 굳이 특별계시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일반계시면 다 된다는 식의 생각도 조심해야 한다. 이런 생각은 특별계시로서의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는 잘못된 생각이다. 이른바 19세기 말 20세기 초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범했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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