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기적이야! 역시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대단하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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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기적이야! 역시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대단하셔”
  • 노경실 작가
  • 승인 2023.02.0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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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5주년 특집 소설] 노경실 작가의 “어서 와, 네 집이잖아!”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걱정 좀 안 하고 살 수 있나요? 하나님, 나는 큰 욕심도 없고, 가난한 시골집의 맏딸로 평생 내 것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잖아요. 하나님, 그럼 나 같은 무지렁이는 하나님이 돌보시지 않나요? 내가 10년만 젊었거나, 대학을 나왔거나, 미모라도 괜찮았다면 하나님은 쓰셨나요?’ 

해미의 억울함은 한탄으로 변했다. 자신이 너무 안쓰럽고 불쌍했다.

모두에게 거절당했다. 아니, 모든 곳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해미는 6개월째 일하고 싶은 곳을 찾았으나 어디에서도 ‘Welcome!’이라는 응답을 받지 못했다. 지난 4년 동안 해미는 극한의 항암치료를 하느라 직장도 그만두고, 이제야 완치 판정을 받고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선 것이다. 새해가 되어 경단녀(경력단절녀) 5년차인 셈이다. 아픈 사이에 해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오십대의 건널목을 휘익 넘어섰다. 자신이 이제는 ‘쉰 몇 살’로 불린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남편과 두 아이 그리고 자신. 이렇게 네 식구가 밥만 먹고 살라고 하면 살 수 있다. 그 살림의 모양새가 텔레비전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휘황찬란한 삶과는 너무나 이질적인 무채색 같지만. 그러나 자신의 수술과 오랜 항암치료과정, 7년 전에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신 뒤 홀로 사는 아무 경제력이 없는 친정엄마, 팬데믹과 부동산 한파,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이어진 나라 안팎의 경제 불황은 작은 빌라에 사는 해미의 가슴을 아예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식당일이라도 해볼까?’
남편과 아이들이 직장으로 학교로 간 뒤부터 눈이 아프도록 컴퓨터 화면과 독대하던 해미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해미에게 육체노동은 무리이다. 의사는 모든 환자들에게 말하듯 해미에게도 “잘 드시고, 잘 주무셔서 심신이 편해야 합니다.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아니, 이게 최선의 방법이지요. 혹시 종교생활을 하신다면… 무슨 종교이든 건강을 위해서라도 좀더 깊이하시는 게 도움도 될 수 있지요”라고 했다. 의사들은 절대 종교에 대한 말을 하지 않는데, 이제 해미와 많이 가까워졌는지 한 박사는 마지막 항암치료 때에 해미에게 슬쩍 종교이야기를 했었다.  
 
‘이제라도 예슬이를 따라서 교회에 가볼까?’
예슬이의 큰아들과 해미의 큰딸이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바람에 자연스레 둘은 친구가 된 것이다. 해미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암 선고를 받은 뒤부터 4년 넘게 함께해 준 예슬이. 예슬이를 따라 병원 안에 있는 교회도 가고, 예슬이가 다니는 교회도 갔었다. 그때마다 해미는 울었고, 예슬이도 울어주었다. 해미는 살려달라고 기도했고, 예슬이도 함께 몸부림쳤다. 
예슬이는 해미에게 ‘느헤미야’를 함께 읽자고 했고, 느헤미야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도 해주었다.
“네 이름이 노해미잖아. 그래서인지 나는 네가 병이 깨끗이 나아지면 느헤미야같은 기도의 사람이 될 것 같아. 그리고 느헤미야처럼 성전을 다시 쌓는 일도 할 수 있지 않겠니? 지금 너의 집에서 너만 하나님을 알잖아. 그러니까 너의 가족과 가정의 성전, 친정의 성전도 지어나가야지. 느헤미야처럼! 안 그렇니, 노해미야? 하하하…’’

수술 뒤, 병원에서 퇴원한 해미는 교회에서 할 수 있는 봉사는 찾아서 다 했고, 목장모임도 최선을 다했다. 성경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적어서 마치 학원생처럼 성경공부반에도 다녔고, 죽을 때까지 옷을 안 산다는 결심으로 할 수 있는 모든 물질의 섬김도 다 했다. 그때마다 예슬이는 말렸다. 
“해미야, 너무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 마. 그냥 너의 친정엄마나 자식들을 사랑해서 하듯이 해. 마치 밥하고, 빨래를 개고, 청소하고 나서 기분 좋게 차 한 잔을 마시는 것처럼. 그러다가 지치면 어떡하려고 해?”
그러나 해미는 웃었다.
“사람은 뭘 하든 심은 대로 거두는 법이야. 나는 아직 성경을 잘 모르지만 좋은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 하다못해 농부들의 반의 반 만큼은 해야 좋은 열매든, 반쯤 좋은 열매든 맺을 수 있는 거 아니겠어?”
누구도 해미를 막지 못했다. 완치판정을 받는 날에는 두 사람은 함께 교회에서 찬양을 한 시간도 넘게 불렀었다.  

그러나 해미는 언젠가부터인지 예슬이를 피하고 있다. 아니, 하나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숨어 다니는 꼴이다. 요즘 해미는 화가 많이 났다. 하나님에게 따지고 싶고, 소리치고 싶어서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암에서 해방되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느 것도 문제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뭐지?’
자기 생각과 계산으로 정리해보니 암에서는 벗어났지만, 현실적인 상황은 그 전보다 더 나빠진 것 같았다. 하나님에게 살려달라고 했는데, 간신히 자신을 물에서 건져만 주고는 신발도, 옷도, 가방도 그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간 하나님이라는 원망이 그득했다. 해미는 하나님에게 ‘왜 내가 당신에 화가 났고 실망했는지 다 말하고 싶습니다!’라고 노트에 적는다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았다. 오히려 암치료 이전과 이후의 삶이 흑백처럼 명료하게 달라진 것 같았다. 
세상에서 잊혀지고, 육체노동도 버거운 몸뚱이 외에는 세상에서 아무 효용가치가 없는 것 같은 자신.
이미 바닥이 난 가정경제와 눈앞이 희미해진 노후대책.
훌쩍 커버린 만큼 희망도, 욕망도 함께 커버려서 ‘더 주오, 더 주오, 더 주오’라는 주문만 외우는 것 같아 감당하기 힘든 두 아이. 
5년 사이에 자신 때문에 할아버지가 된 것 같은 남편과 더 어린애가 되어버린 친정 엄마.

암 해방의 기쁨은 너무 짧았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길은 한참 남은 것 같았다.
‘해방되었는데 왜 내 앞에 있는 것은 거친 광야이지? 이런 광야를 가게 하실 거라면 차라리 암 걸리기 전에 통과하게 하셨어야 하는 거 아니야? 지금 내가 무슨 힘과 능력이 있다고? 나를 오라고 하는데도, 나를 필요로 하는 데도 하나도 없는데…’
해미는 컴퓨터 앞에서 일어나며 생각했다.
‘하나님은 왜 나를 살려주셨을까? 내가 미워서, 내 죄가 많아서 고통 좀 받아보라고? 그런데 내가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졌다고?’
갑자기 뱃속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목구멍까지 화악 치솟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억울함’이었다. 
‘너무 억울해!’
해미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친정식구들 이제껏 지금까지도 돌보고 사는 것, 내 가정을 이 정도 세워나간 것, 항암치료 잘 견딘 것, 교회에서 온갖 봉사한 것, 단 돈 천 원도 아끼면서 여기저기 후원하는 것. 이것만으로도 내 죄가 있다면 대신 탕감해 주실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눈물이 나왔다. 몸이 떨려서 의자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따뜻한 보리차를 한 컵 담은 해미는 거실 바닥에 앉아 소파에 등을 기대었다. 몸이 좀 진정되자 해미는 다시 하나님께 물었다.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걱정 좀 안 하고 살 수 있나요? 하나님, 나는 정말 평범한 아줌마입니다. 하나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큰 욕심도 없고, 가난한 시골집의 맏딸로 평생 내 것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잖아요. 하나님, 그럼 나 같은 무지렁이는 하나님이 돌보시지 않나요? 쓸만하고 능력있는 사람들만 돌보시나요? 내가 10년만 젊었거나, 대학을 나왔거나, 미모라도 괜찮았다면 하나님은 쓰셨나요?’
해미의 억울함은 한탄으로 변했다. 자신이 너무 안쓰럽고 불쌍했다. 
‘돈만 있으면 암도 고치고, 집안도 행복하고, 친정엄마도 행복하게 해주고, 남편도 행복해지고… 돈만 있으면… 돈만 있으면 되는데…’
순식간에 하나님이 사라지고 돈이 해미의 온 마음을 휘감았다. 그러자 아침에 큰딸이 식탁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집은 돈만 좀 있으면 걱정하나 없이 행복할 텐데… 이제 엄마도 완치됐으니까!”
아이돌이 되고 싶어 작은 기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큰딸은 우선 학원에 보내달라고 하루 24시간 조르고 있다. 심지어는 며칠 전에 이런 말까지 했다.
“외할머니랑 같이 살고, 할머니 집을 팔면 안 되나? 내가 성공하면 몇 백 배로 갚을 수 있는데… 엄마, 이번 할머니 생신 때 만나면 말 좀 해 봐. 다른 집들은 자식 성공시키려고 아파트도 판대!”
다행히 아들이, “누나, 정신차려! 아이돌 되기 전에 인간돌이 되라!”라며, 한 마디하고 냅다 학교로 달려갔었다. 
딸이 한 말이 자꾸 해미의 가슴 속에서 빙빙 소용돌이쳤다. 그러더니 해미는 자신과 딸이 하나로 합쳐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하나가 된 두 사람이 마녀의 주문을 외우듯이 끝없이 중얼거렸다. 
‘돈 만 있으면 우리집은 행복할 텐데… 할머니 집을 팔아서… 우리집은 돈만 있으면… 할머니 집을 팔아서… 돈 많은 우리집… 할머니 집을 팔아서… 우리집은 돈 많은… 할머니 집을 팔아서…’
그동안 사라진 줄 알았던 오심이 올라왔다. 헛구역질이 이어졌다. 거실이 빙빙 도는 어지럼증을 참으면 화장실로 가려는데 남편에게서 톡이 왔다.

“당신 취직만 되면 행복해질 수 있지? 내가 예전에 모시고 있던 사장님한테 부탁했더니 다음달부터 사무실 나오래. 사무실이 우리집에서 지하철로 겨우 다섯 정거장이야. 이건 기적이야! 역시 당신이 믿는 하나님은 대단하셔! 이따 집에서 다시 애기하자. 당신 이제 행복하지?”

해미는 어느새 오심이 사라지고 어지럼증도 싹 나은 것 같았다. 머리카락을 대충 다듬고, 급하게 집을 나섰다. 어디론가 향해 뛰기 시작했다. 뛰면서 예슬이에게 전화를 했다.
“예슬아, 어디야? 나, 지금 교회가고 있어! 너도 올 수 있니?”
“해미야, 어떻게 알았어? 나, 지금 교회에 있어. 내일 청소년부 행사가 있어서 도우려고 왔어. 어서 와. 네 집이잖아! 너, 그동안 가출 너무 오래 했다. 하하하! 빨리 와!”

 

동화작가로 알려진 노경실 작가가 산문집 ‘사는데 꼭 필요한 만큼의 힘’(출판사 다우)을 펴냈다.
노경실 작가는 한국일보,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소설과 동화 당선됐다. 작품은 상계동아이들, 복실이네 가족사진, 열네 살이 어때서, 행복하다는 건 뭘까?,우리 아빠는 내 친구, 철수는 철수다, 어린이 인문학여행 전3권 등 많은 책을 펴내고, 활발한 번역작업을 하고 있다. 일산 제자광성교회를 출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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