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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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한글
  • 이복규 장로
  • 승인 2022.10.07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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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규 장로/서울 산성감리교회, 서경대학교 명예교수
이복규 장로
이복규 장로

 

여러 해 전 숭례문이 불탔을 때, 국보 1호가 사라졌다며 통탄해들 했다. 하지만 우리 진짜 국보 1호는 훈민정음이다. 숭례문 없이도 살 수 있으나, 훈민정음 없이는 한국인으로서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것도 훈민정음 덕분이다. 아직도 한문을 빌어쓰고 있다면 얼마나 답답한 노릇일까? 쓰는 이도 괴롭거니와 그 어렵고 복잡한 한문 칼럼을 과연 우리 독자 가운데 몇 사람이나 읽고 반응할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고마운 세종대왕이요, 훈민정음이다.

역사의 발전이란 무엇일까? 역사의 주인공 노릇을 하는 인간의 수가 늘어가는 한편, 그 인간이 개인적으로는 이전보다 더 자유롭고, 사회적으로는 이전보다 더 평등한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렇게 볼 때, 한글이야말로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준 최고의 은인이다. “어리석은(못 배운) 백성이 말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다 펼쳐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내가 이것을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었으니…” 이 훈민정음 서문의 이상이 이루어진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말하고 싶은 것을 누구나 제대로 마음껏 표현한다. 그 결과, 교육 강국이 되어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로서, 경제대국으로 부상하여 있다. 정치적인 면에서도, 아테네 이후 민주주의의 모범국으로 추앙받고 있다. 정보화 선진국이 되어, 거의 모든 정보를 국민이 공유해, 더 이상 함부로 독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아직 훈민정음 즉 한글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게 여럿 있다. 한류가 퍼져, 이 나라 저 나라에 한국어학과가 개설되고 한글공부 모임이 늘어가고 있는 이때, 어떤 외국인이 다가와 한글에 대해 물으면 제대로 대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국어국문학과 출신으로서 세 가지만 알리고 싶다.

첫째, 한글과 한국어는 다르다. “세종대왕이 한글 만들기 전에는 어느 나라 말을 했나요?”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다. 세종대왕이 만든 게 우리말(한국어)인 줄 아는 게다. 한국어는 우리말이고, 한글은 우리말을 적는 문자(알파벳)이다. 우리말은 단군 때부터 있었던 것이고, 그것을 발음대로 적는 글자가 없어 한자와 한문을 빌어서 기록하다가, 세종대왕이 만들었다. ‘훈민정음(訓民正音 :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이라는 원래의 명칭을 그대로 썼더라면 이런 혼동이 생기지 않았으련만, 1910년 무렵 ‘한글’이라고 이름을 바꾸면서 문제가 생겼다. 글자와 글은 다른 법인데, ‘한글’이라고 고쳐 불렀으니, 국민의 의식에 혼란이 일어난 것이다. 글자가 모여 글이 되건만, 글과 말을 적은 단위로서의 글자인 ‘훈민정음’을 ‘한글’이라 함으로써, ‘한글=국문’ 또는 ‘한글=한국어’라고 오해하게 만든 셈이다. 조선어학회라는 학회 이름을 광복 후 ‘한국어학회’가 아니라 ‘한글학회’라 잘못 바꾼 것도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 두 번째 처사다.

둘째,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한글이 아니다. 어떤 특정 문자를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하지는 않는다. 문자를 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면, 중국의 한자, 일본의 가나, 서구어의 알파벳 등도 지정받아야 할 것이다.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책으로서의 훈민정음(해례본)이다. 세상에 문자가 많지만, 그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원리와 활용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훈민정음 해례본처럼 상세하게 밝혀 놓은 책은 없다. 일제강점기에 안동에서 발견되어 현재 간송미술관(성북구 소재)에서 소장하고 있으니 하나님 은혜다.

셋째, 1938년에 한글 교육 금지 조치가 내려졌으나, 그해에 한글판 개역 성경전서가 출판되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일제가 우리말을 못 쓰게 하고, 한글 교육을 금지했으나, 교회에서는 우리말과 한글 성경 및 한글 사용이 가능했다. 그 결과, 당회회의록들이 한글로 남아 있다. 기적 같은 일,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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