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새벽을 깨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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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새벽을 깨우는가?
  • 승인 2004.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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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영목사/새벽교회

우리 교회가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북한 선교를 위한 비전’이 막 무르익을 때였다. 어느 여 교우님께서 아들인 남자 중학생과 친구를 데리고 필자를 찾아왔다. 이제 막 소년의 티를 벗은 남자 아이는 무슨 큰 죄라도 지은 듯 이 고개를 푹 숙이고 내 앞에 앉았다. 교우님 역시 말문을 쉽게 열지는 않았다. 서로에게 어색한 분위기가 잠깐 흘렀다.

“무슨 일이죠? 교우님!” “목사님, 이 녀석이 글쎄….” 무엇인가 결심을 한 듯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며칠 전부터 아들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함을 느꼈다는 것이다. 친구 녀석이 전에 없이 친하게 붙어다니고 용돈을 준 것 이상으로 쓰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는 조용히 물었다는 것입니다. “너 혹시 돈을 주웠니? ” “….” “괜찮아, 엄마에게 솔직히 말해라.” “…. 엄마, 저어…. 사실 며칠 전 교회에서 목이 말라 청년 교구실에 있는 물을 마시러 갔다가 지갑을 보았어요. 호기심에 들여다보니 돈이 있기에 6만원을 꺼냈어요” “….”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이 이야기를 듣고 고민하며 기도하다 도저히 마음이 괴롭고, 뭔가 마음의 치유함을 받으러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음을 밝혔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이 모자(母子)의 낙담과 죄책감을 지울 수 있을까? 이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아들이 바르게 되기를 원하는 어머니의 믿음이 너무도 진지하지 않은가! 잘못을 알고 회개하는 심령으로 온 아이에게 냉엄한 훈계도 필요하겠지만, 이보다 필요한 것은 심령을 울리는 변화의 기도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주님께 죄를 사하여 달라는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필자의 간절한 기도가 끝난 후, 두 모자는 평온한 표정으로 내 방 문을 나섰다.

그리고 얼마 후, 두 모자(母子)가 다시 필자의 방에 찾아왔다. 기쁨의 얼굴과 함께 손에는 ‘북한선교 헌금 작정 봉투’가 들려 있었다. “목사님,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목사님의 기도 후, 저 혼자 예배실 강단에 엎드려 회개기도를 드렸어요.” “아, 그랬군. 그런데 이 많은 헌금을 네가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니?” 필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지금은 중학생이지만 지금부터 용돈을 절약하여 저축하고, 또 몇 년 후면 대학생이 되니까 영어 아르바이트를 하면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옆에 앉은 교우님이 흐뭇하고 사랑스런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은 비전으로 인해 완성되어 가는 존재임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만약 인간에게 비전이 없거나 희망을 볼 수 없다면 악행을 일삼기 쉬운 때가 특히 청소년기가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죄악까지도 회개시켜 비전을 보게함으로써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이제 그 아이의 삶의 모습과 나라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진지해질까? 그 모습을 상상하면 흐뭇하고 즐겁다. 이렇게 우리 교회는 ‘북한 선교라는 비전’을 통해 삶을 새롭게 헌신한 이들이 많다.

요즈음 새벽을 깨우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새벽을 깨우는 사람은 누가 깨우는가?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 도다”(시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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