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앙고백으로 성경읽기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창세기를 이해하면 구약성서의 원리를 상당부분 이해할 수 있다고 믿어진다. 그만큼 창세기는 성경의 뼈대를 이루는 사상이 많이 담겨있다. 우선 창세기 1장에 소개된 창조이야기에 주목해보자. 하루 하루가 넘어갈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창조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단숨에 모든 것을 창조하지 않고 왜 하나 하나 차례대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을까?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하나님의 창조행위는 인간의 창조적 행위를 위한 모델이다. 첫째 날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빛이 만들어지는데 그 빛에서 어두움이 나누어진다(창 1:4). 빛과 어두움은 처음부터 별개인 것이 아니라 원래 하나였다는 말이 된다. 빛과 어두움을 선과 악의 대명사로 나누어버리는 이원론적(二元論的)인 사고방식은 하나님의 창조과정에 비추어보면 문제가 많다. 어둠은 빛의 대립적인 개념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의 관계처럼 상호 보완적이다. 빛이 있으면 어두움이 있어야 한다. 낮이 있으면 밤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낮에 활동하고 밤에 수면을 취한다. 이것은 인간 삶을 위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질서'이다.
고대 히브리인들 역시 우리 민족처럼 하늘과 땅이 원래 하나였다고 믿었다. 궁창(穹蒼)이라 부르는 하늘이 둘째 날 지어진다(창 1:6-8). 이 궁창의 위 아래는 물이 있다. 결국 궁창 위의 물은 공기 중의 수분이 될 것이며, 궁창 아래의 물은 대양의 물과 땅 속의 물이 될 것이다. 셋째 날 이 물이 정돈되어 바다와 땅이 드러난다(창 1:9-10). 하나님은 땅위의 식물을 말씀으로 생기게 하신 후에 넷째 날 해와 달과 별을 만들어 주야를 밝게 하신다(창 1:12-19). 다섯 째 날에 조류와 어류가 지어지고, 여섯째 날에 동물과 사람이 만들어진다. 그런 후에 일곱째 날에 하나님이 쉬신다. 노동은 쉼을 전제로 한다. 쉼이 없는 노동은 창조적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쉬셨으니 인간도 쉬어야 한다. 그래서 쉬는 것도 창조과정의 일부에 해당된다.
지구는 평평한 모습이며 밤이 되고 낮이 되는 하루는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감히 우리가 사는 땅덩어리가 움직일 리는 결코 없다. 지구는 온 우주의 중심이며 하나님의 축복이 한데 모아진 곳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이스라엘이 우뚝 서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삶 속에서 체험한 모든 것들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에 대한 질문을 했고 그 대답은 하나님의 창조행위로 귀결되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인간의 생명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는 그들의 신앙고백이 담긴 이야기가 창조이야기이다. 성경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과학서도 아니요 역사서나 객관적인 종교학 혹은 철학서도 아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겪은 삶의 체험을 하나님과의 관계성 안에서 기록한 신앙서이다.
박종수 교수(강남대학교/구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