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59주년을 맞는 심정은 착잡하다 못해 비통하다. 역사 왜곡을 시도하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 채택 논란이 재연되고, 설상가상으로 중국 정부가 국무원 산하 사회과학원 소속 변강사지연구중심(邊彊史地硏究中心)이 주관하는 국책사업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통해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는 프로젝트를 강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직면하고 있다.
이 사업의 핵심은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기 위한 논리 개발과 자료 축적 작업이다. 이들은 이미 고구려 유적이 산재한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고구려사는 중국사라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고구려사 왜곡은 만주지방에 대한 역사적 인식의 전환을 통한 한반도 통일 이후의 상황에 대한 대비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더한다.
중국은 한반도 통일 이후 간도 귀속문제 등을 둘러싸고 영토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과 통일 과정에서 북한 난민의 대거 유입으로 북-중 접경 지역이 한국의 영향권에 들어갈 경우 재기될 역사적 연고권 주장을 사전에 차단하자는 것이다. 역사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한족이 만주를 지배한 기간은 1955년 이곳에서 독립 왕국을 건설하려했던 가오강(高岡) 사건 이후 채 50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조선-고구려-발해로 내려온 한민족과 요(堯), 금(金), 청(淸) 등 북방 민족이 만주를 지배해 온 데 이어 러시아의 침탈과 일본의 만주국(1932~45) 건국으로 이 지역에서의 역사적 연고가 취약한 중국으로서 고육지책으로 창안한 정책으로 판단된다.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 왜곡 시도들을 보면서 역사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함석헌 옹(翁)은 조국을 상실한 젊은이들에게 영광스러운 역사를 가르치고 싶었고, 그 기개가 출중했던 고구려의 패망을 중축(中軸) 부러진 역사라 명했다. 그가 발견했던 것은 수치와 귤욕의 역사였다. 문자적으로 기록된 역사 가운데서만 560번의 침략과 100번 이상의 전쟁이 한반도에서 전개됐던 것이다.
오랜 역사 탐구 끝에 그가 다다른 결론은 역사는 한민족에게 고난의 종이 짊어졌던 메시야적 사명을 위탁했다는 것이다. 세계의 구원과 평화를 위해 고난과 수치를 받아들이자는 메시야적 사명을 향한 호소는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도 남았다. 우리는 새롭게 역사의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의미를 깨달은 자가 미래의 역사를 책임질 수 있다. 성경이 증언하는 역사 가운데 제국주의적 야망을 가졌던 강대국들은 또 다른 패권을 꿈꾸는 세력들에 의해 패망하고 말았다. 반면에 평화를 위해 고난을 감당했던 무리들이 역사의 주역으로 부름 받아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세상의 가치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배반하는 역사를 되풀이했다. 그들은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했고, 주어진 가능성은 회개를 통한 개인과 역사의 변혁이었다. 그 가운데서 이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었다. 한없이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욜 2:13)의 은총의 체험은 새 역사 창조의 원동력이 됐다.
한국교회는 그 시작부터 민족의 역사와 떼려야 뗄 수 없게 연결됐다. 민족의 고난을 온몸에 짊어지고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섭리를 찾았다. 해방 59주년을 맞는 한국교회는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도록 부름 받고 있다. 한 민족의 역사는 외부적인 도전과 침략에 의해서 무너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 민족 공동체가 외부적인 도전에 응전할 내적인 역량을 갖고 있느냐이다. 한국교회는 외부로부터 오는 도전에 응전할 수 있는 민족의 내적 역량을 축적하고 발전시키는 일에 앞장서야 할 새 역사의 주역으로 새롭게 부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