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주를 열며 - '실패하고도 상처받지 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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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를 열며 - '실패하고도 상처받지 않는 법'
  • 승인 2004.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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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진목사/남서울안산교회

사람들은 이기고 싶어 한다. 누구나 성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승리하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현대 문명권에 속한 사람들은 온통 승리에 혈안이 되어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승리의 대가나 전리품보다도 승리 자체를 갈구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승리는 이미 종교요 신앙이요 목표가 되었다. 왜 이겨야 하는지도 모른 채, 더 정확히 말한다면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이기기 위해 중단 없이 질주하고 있다. 가끔 아름다운 꼴찌나 멋진 패배의 이야기가 흘러나오지만, 곧 승리자의 함성 속에 묻혀버리고 만다. 승리의 고지 위에 자랑스런(?) 자신의 깃발을 꽂기 위해,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뛰고 또 뛴다.

물론 승리를 위한 노력에는 긍정적인 면이 많다. 현대 세계에서의 발전과 진보는 승리를 위해 참고 인내하고 성실하게 노력한 자들의 열매이다. 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오늘의 빛나는 문화를 만들었다. 성공을 폄하시키거나, 실패를 미화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처사이다.

그러나 승리라는 빛에는 반드시 실패하는 그림자가 함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공과 실패는 한 동전의 양면과 같다. 실패는 성공의 다른 측면일 뿐이다. 실패가 있기에 성공이 있다. 만약 실패가 없다면, 성공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성공을 추구한다면, 반드시 그 동반자인 실패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실패 역시 잘 다루기만 한다면, 승리만큼이나 긍정적인 면이 많다.

실패에서 상처를 받지 말자. 실패를 즐거워하고 기뻐하라. 실패는 성공을 만들어 낸 일등 공신이다. 나의 실패가 없었다면, 다른 사람들의 찬란한 성공 역시 존재할 수 없다. 실패는 비록 주연은 아닐지라도, 주연을 돋보이게 해 주는 가장 확실한 조연이다. 이쯤 되면 실패는 세상을 살리는 감초가 아닌가? 더구나 오늘의 실패는 내일의 성공을 보장해 주기도 한다.

실패는 인생을 겸손과 온전함에 이르게 한다. 우리가 실패하게 될지라도 스스로 실패라고 느끼지 않으면, 결코 실패라고 부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미 그 실패는 성공이기 때문이다. 실패학 박물관을 견학해 보라. 실패학을 공부해 보라. 아니 자신의 실패를 곰곰이 반추해 보라.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향기는 예외 없이 실패라는 거름을 통해 만들어진다.

갑자기 남편을 암으로 잃어버리고, 마흔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네 딸의 어머니로 홀로 남겨진 정주연씨! 그는 자신의 인생을 향해 “상실은 있어도 상처는 없다”고 외치고 있다. 그는 남편을 떠나보내면서 쓴 333일간의 간병 일기를 ‘행복 일기’라고 불렀다. 남편의 투병생활조차 ‘투병 축제’로 명명했다.

그는 자신의 상처를 축복과 사명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뺄셈의 사고가 아닌 덧셈의 사고로, 극적인 인생 뒤집기에 성공했다. 부재의 시기에 충만을 맛보았고, 잃어버림을 통해 채움을 얻었다. 예수님 역시 죽음을 통해 생명을 얻은 바 있다.

실패와 상처는 전혀 다른 단어임을 기억하라. 실패는 외부에 나타난 결과이고, 상처는 내부의 현상일 뿐이다. 실패는 실패고, 상처는 상처다. 실패하면 반드시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공식은 없다. 실패한 후에 우리는 상처를 받을 것인지 여부를 다시 선택하게 된다. 실패는 정말 좋은 인생의 동반자이다. 실패에서 상처받기보다 회복되는 법을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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