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소원만 갈망하는 것은 ‘잘못된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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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소원만 갈망하는 것은 ‘잘못된 신앙’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1.12.07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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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예언서 해설 -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사 33:6)

예언서에는 종종 책망과 위로가 번갈아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오락가락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둘러싼 상황과 말씀을 듣는 청중의 태도가 변화무쌍하기 때문입니다. 한결같으신 하나님을 믿는다는 우리 마음이 얼마나 널뛰기를 반복하는지 생각해 보면 놀랄 일도 아니지요. 

이스라엘도 입으로는 늘 믿음을 고백하지만 마음은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그들을 둘러싼 힘센 나라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대 근동의 패권을 다투는 슈퍼파워들의 각축 속에서 이스라엘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전심을 다해 그분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알기에 예언자는 이스라엘을 대표해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사 33:2)” 하나님의 팔이 우리를 도우실 때 비로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환난 날에 애굽의 마병에 기대고 사람의 지략을 믿는 이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않고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재앙을 자초했습니다(31:1~2). 그들을 지킬 수 있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새가 날개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31:5) 이 말씀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믿어야 했습니다. 남 유다의 아하스왕이 북 이스라엘과 아람의 연합군을 무서워하며 떨 때 하나님께서 유다의 안전을 약속하시며 다만 믿음을 요구하셨던 그대로입니다: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사 7:7~9)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믿음이 능력이고 실력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스라엘은 믿음의 부재는 물론 왜곡된 믿음 때문에도 책망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행함 없는 믿음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행동이 곧 믿음이라는 착각 역시 위험합니다. 하나님은 마음에 없고 오로지 자신의 소원을 이루는 데만 마음이 있다면 분명 잘못된 신앙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늘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적인 태도 역시 건전한 신앙과는 거리가 멉니다. 예언서의 말씀들은 하나님을 믿지도 경외하지도 않는 거짓 신자들의 종교놀음을 꾸짖는 동시에, 그분과의 인격적인 사귐 없이 외적인 종교 행위에 골몰하는 행동도 엄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와 비슷한 시기에 사역했던 미가 선지자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6~8)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세상은 정의로워야 합니다. 사람들 간에는 인자함(인애)을 주고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고 남들에게 인애를 베풀고 있다며 목이 뻣뻣해진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에 실패한 것입니다. 사람이 제 힘으로 이루려는 정의는 늘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참된 정의와 공의는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여호와께서는 지극히 존귀하시니 그는 높은 곳에 거하심이요 정의와 공의를 시온에 충만하게 하심이라”(33:5)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우리의 보배라고 고백하는 이유입니다.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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