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심긴 그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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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심긴 그 자리에서
  • 손동준 기자
  • 승인 2021.12.02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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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가 컴컴한 밤길을 산책하고 있었다. 마침 크리스마스이브였는데, 그날따라 어둡던 숲이 등불을 켜놓은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고 한다. 하늘을 보니 눈 쌓인 전나무 숲 사이로 달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인간은 저 전나무처럼 초라하지만, 은혜의 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날 수 있구나.”

이 깨달음을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루터는 전나무 하나를 집으로 가져왔다. 그 위에 눈 모양의 솜과 빛을 발하는 리본, 촛불을 장식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크리스마스트리가 됐다는 이야기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루터로부터 시작됐다는 이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와닿는다.

얼마 전 문화목회와 관련한 취재를 다녀왔다. 성탄전야 예배를 시연하고 캐럴 콘서트를 열었는데, 업무 중에 즐기는 라이브 공연이 참 따뜻하고 좋았다. 역시 겨울을 겨울답게 해주는 최고의 장식은 크리스마스가 아닌가 싶다.

이날 포스트 코로나와 관련한 기독교인 대상 조사 결과가 발표됐는데, 흥미를 끄는 내용이 있었다. 사회적 신뢰 회복을 위해서 조급해하지 말라는 것. 한국 개신교는 코로나19를 거치며 사회적 신뢰도가 완전히 무너졌는데, 지금은 단기적으로 신뢰도가 올라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며, 교회의 본질인 사역에 초점을 두고 묵묵히 최선을 다할 때라는 게 골자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회적 신뢰 그 자체가 아니라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느냐에 있다. 신자 개인이나, 교회나 그 자체로만 보면 초라한 전나무에 불과하다. 우리 위에 은혜의 빛이 비쳐야 비로소 아름다워지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 위에 임한 은혜의 빛이 온전히 드러나도록, 우리는 보내진 각자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의 본질에 묵묵하게 충실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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