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무당 찾는 나라에서 의술로 복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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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무당 찾는 나라에서 의술로 복음 전합니다”
  • 이진형 기자
  • 승인 2021.12.0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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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닥터' 마다가스카르 이재훈·박재연 선교사

17년째 오지 이동 진료 사역으로 6만 명 환자 진료해
현지 발전 돕는 진정성 인정 받아 대통령 훈장 받기도


아프리카 남동부에 위치한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섬나라 마다가스카르. 병원도 의사도 찾아보기 힘든 이 나라의 구석구석을 다니며 17년째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있는 한국인 부부가 있다. 몇 년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길 위의 닥터’로 소개되며 대중에게 알려진 이재훈·박재연 선교사가 그 주인공. 두 사람의 겉모습은 누가 봐도 한국인이지만 조금만 대화를 나눠보면 그들이 영락없는 말라가시(마다가스카르인)라는 것을 금방 느끼게 된다.
 

이재훈·박재연 선교사는 병원도 의사도 찾아보기 힘든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구석구석을 다니며 17년째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있다.
이재훈·박재연 선교사는 병원도 의사도 찾아보기 힘든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구석구석을 다니며 17년째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서도 왜 그 사람을 좋아하는지 이유를 모르잖아요. 그냥 좋아하는 거지. 저희는 17년째 마다가스카르를 짝사랑하고 있습니다. 마다가스카르에 무엇인가 좋은 일이 자꾸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가끔은 태어나고 자란 우리나라보다 더 가깝게 느껴질 때도 있을 정도라니까요. 이건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과 의사인 이재훈 선교사와 아내 박재연 선교사는 지난 2005년부터 지금까지 의료환경이 열악한 마다가스카르의 오지를 다니며 이동 진료 사역을 해왔다. 전국의 22개 행정구역 중 20개 지역을 모두 찾아가는 동안 지구를 5바퀴 돌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거리를 달렸다. 총 114번의 사역을 다녀오면서 이 선교사가 만난 환자는 6만 명이 넘는다.
 

이재훈·박재연 선교사는 지난 2005년부터 지금까지 의료환경이 열악한 마다가스카르의 오지를 다니며 이동 진료 사역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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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22개 행정구역 중 20개 지역을 찾아가며 총 114번의 사역을 다녀오는 동안 이 선교사가 만난 환자는 6만 명이 넘는다.

아프리카에서 이동 진료 사역을 떠나는 것은 엄청난 강행군이다. 1년 전부터 답사를 하고 지역 보건소나 관계기관에 방문해서 허락을 받은 다음 환자를 모집한다. 짐을 꾸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팀원들을 한가득 태운 차량에 의료기구와 약, 식량과 텐트까지 짐을 잔뜩 싣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보면 타이어에 펑크가 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꼬박 3일이 걸려 겨우 사역지에 도착하면 잠을 잘 자리와 화장실부터 만들어야 한다. 제대로 눈도 붙이지 못한 채 진료가 시작되면 4박 5일 동안 쉴새 없이 몰려드는 환자를 맞이한다. 웬만한 사명감이 아니면 하루도 버티지 못할 만큼 고된 일정이다.
 

팀원들을 한가득 태운 차량에 의료기구와 약, 식량과 텐트까지 짐을 잔뜩 싣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보면 타이어에 펑크가 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꼬박 3일이 걸려 겨우 사역지에 도착하면 잠을 잘 자리와 화장실부터 만들어야 한다.

“이곳 사람들 대부분은 몸이 아프면 무당을 찾아가요. 무당이 해주는 건 주술과 굿밖에 없는데도요. 항생제와 진통제만 있어도 나을 수 있는 병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너무 많습니다. 살면서 의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주저하다가도 진료를 받은 후에 주변 마을까지 소문을 내서 진료소가 북새통을 이룰 때가 많습니다. 힘들고 지칠 때도 있지만 우리가 아니면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하는 거죠.”
 

아프면 무당을 찾아가는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은 항생제와 진통제만 있어도 나을 수 있는 병을 평생 안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진료를 받기 위해 몰려든 마다가스카르 사람들. 대부분 살면서 의사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기승전 “마다가스카르”
이 선교사는 어린 시절 혼자서 교회를 다니다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사도행전 말씀을 읽고 가족을 전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때 동생에게 들은 말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계기가 됐다.

“‘형 같은 사람이 다니는 교회는 안 다니겠다’라는 동생의 말에 충격을 받았어요. 그 이후로 몇 년 동안 저의 믿음이 가짜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리고 아프리카 선교사가 될 테니 저의 믿음을 진짜로 여겨달라고 하나님과 약속했죠. 학생으로서 가장 어려운 공부는 의학이라 생각했고 아프리카는 제가 알고 있는 가장 어려운 지역이었으니까요. 의대에 진학하고 전공을 결정할 때도 선교지의 필요를 생각해 외과를 선택했어요. 어린 시절 죄책감을 떨쳐내기 위한 일종의 딜(?)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제 고백을 들으시고 지금까지 저를 인도하셨습니다.”

선교사가 되기 위해 오랜 시간을 준비한 그였지만 현장의 의료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아프리카의 의료현실을 두 눈으로 직접 본 이 선교사는 한국으로 돌아와 산부인과, 정형외과 등 무려 5개의 전문분야를 수련했다. 그리고 지난 17년 동안 그의 손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고 무수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 쓰임을 받았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그의 노력과 순종을 통해 아무도 찾지 않던 어두운 땅에 한 줄기 빛이 비춰졌다.
 

수술을 집도하고 있는 이재훈 선교사. 지난 17년 동안 그의 손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고 무수한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 쓰임을 받았다.
아프리카의 의료현실을 두 눈으로 직접 본 이 선교사는 한국으로 돌아와 산부인과, 정형외과 등 무려 5개의 전문분야를 수련했다.
아프리카의 의료현실을 두 눈으로 직접 본 이 선교사는 한국으로 돌아와 산부인과, 정형외과 등 무려 5개의 전문분야를 수련했다.

한편 이재훈 선교사의 아내 박재연 선교사는 대학 시절 ‘주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을 배우자로 맞이하고 싶다’는 기도를 하던 중 이 선교사를 만나 마다가스카르 선교사로 함께 파송 받게 됐다. 이 선교사는 의료선교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의사인 본인이 조명을 받을 때가 많지만, 박 선교사가 없었다면 지난 17년 동안의 모든 사역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제가 하는 일은 5%밖에 안 되고 나머지 95%는 모두 아내가 감당해요. 몸도 아프고 힘든데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오는지 모르겠어요”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

박재연 선교사는 국제구호개발협력 NGO 웰 인터내셔널 대표와 아프리카 미래재단 부지부장까지 겸하고 있다. 그는 쉴 틈 없이 진행되는 사역에 온 몸을 던져 헌신해오면서 목디스크와 허리디스크, 어깨와 다리 수술까지 할 정도로 몸이 망가졌지만, 곧 현지에 돌아가 새롭게 진행할 프로젝트 준비로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재훈 선교사는 아내 박재연 선교사가 없었다면 지난 17년 동안의 모든 사역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박 선교사는 목디스크와 허리디스크, 어깨와 다리 수술까지 할 정도로 몸이 망가졌지만, 쉴 틈 없이 진행되는 사역에 온 몸을 던져 헌신하고 있다.

“주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주님은 저에게 ‘네가 먼저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쉴 수가 없었는데, 지난해 코로나19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든 사역이 멈추게 됐죠. 처음에는 답답했지만 하나님께서 회복과 안식, 그리고 새로운 전환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주셨습니다. 덕분에 현지 의료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새로운 사업을 준비할 수 있었어요. 아이들이 언젠가 ‘엄마아빠는 기승전 마다(마다가스카르) 잖아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저희 부부는 정말로 온통 ‘마다’ 생각뿐이에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이를 통해 열악한 아프리카의 의료환경이 조금씩 나아지고 더 많은 생명이 살아나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걸음 내디딘다.<br>
17년째 마다가스카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이재훈·박재연 선교사는 자녀들에게 "기승전 마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온통 '마다' 생각뿐이다.

큰 의사 ‘라도꾸’로 불리기까지
이 선교사 부부는 선교사역을 시작할 때 공용어인 프랑스어가 아닌 마다가스카르 현지언어를 습득했다. 오지 진료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다른 선교사들보다 모양새는 떨어지지만, 덕분에 이 선교사 부부를 진정한 말라가시(마다가스카르인)라고 인정하는 현지인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또 사역의 방향을 정할 때도 현지의 의료자원 개발을 돕는 것을 원칙으로 세웠다. 그래서 협력하기 까다로운 정부를 끊임없이 설득하고 현지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한국인 최초로 현지 의사 자격도 획득했고 17년 동안 15번이나 바뀐 보건부 장관을 매번 만나서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할 때는 PCR 검사 시스템을 도입하기도 했고 현지 질병관리소를 개설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얼마 전에는 대통령 훈장도 받았다. 마다가스카르의 발전을 진심으로 돕기 원하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는 진정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진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 ‘큰 의사 선생님’이라는 뜻으로 ‘라도꾸’라는 별명을 붙여줬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제 별명을 넣은 노래를 만들어 불러줄 때는 정말 가슴이 뭉클했죠. 때로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아무리 이야기해도 쉽게 바뀌지 않는 현실을 마주할 땐 힘들기도 했지만 저희의 진심이 조금씩 전해지는 것이 느껴질 땐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낮은 곳으로 오셔서 가난하고 병든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신 예수님처럼 마다가스카르의 친구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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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은 이 선교사에게 ‘큰 의사 선생님’이라는 뜻으로 ‘라도꾸’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이 선교사 부부를 진정한 말라가시(마다가스카르인)라고 인정하는 현지인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이재훈·박재연 선교사는 오는 12월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현지로 돌아가면 한국국제협력단(KOICA)와 협력해 내년부터 진행되는 ‘통합진료의 교육과정개발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현지 대학병원과 협력해 대학원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한국에서 교수진을 초빙해 현지인 의료 인력 20명을 양성하는 프로젝트다. 작은 발걸음이지만 이를 통해 열악한 아프리카의 의료환경이 조금씩 나아지고 더 많은 생명이 살아나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걸음 내디딘다.

“마다가스카르는 인구 2,800만 명 중에 의사가 5,000명 밖에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외과 의사는 300명뿐이고요.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지역을 다니며 많은 환자를 진료했지만 이곳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덜어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현지 의료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앞으로는 제자들을 교육하는 데 힘을 쏟으려고 합니다. 100명의 현지인이 외과술기 한가지씩만 배워도 살릴 수 있는 환자가 엄청나게 많거든요. 사람을 키워야 하는데 자체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라 수혈이 필요합니다. 의술을 지도해주실 교수진, 프로젝트 매니저와 사업수행 인력, 플랫폼 역할을 할 센터 건립 등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시도록 기도 부탁합니다.”
 

이재훈·박재연 선교사는 오는 12월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현지로 돌아가면 내년부터 진행되는 ‘통합진료의 교육과정개발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작은 발걸음이지만 이를 통해 열악한 아프리카의 의료환경이 조금씩 나아지고 더 많은 생명이 살아나길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걸음 내디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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