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진 권찰이 얼마 전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어린 시절 어려웠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이야 먹을게 지천이지만 불과 50여 년 전만 해도 농경국가였던 우리나라는 가난하고 식량 걱정을 해야 했던 빈곤 국가였습니다.
‘김일’이라는 레슬링 선수를 기억하고, ‘여로’라는 1972년 TV 일일 프로그램을 기억하는 정도의 세대라면 누구든 충분히 공감하는 내용일 겁니다.
그때 그 시절 손자에게 어려웠던 삶을 이야기해주고, 먹을 게 없어 배고픈 이야기를 해줬더니 손자가 딱하다는 투로, “할아버지 왜 배고파요? 라면 끓여 먹으면 되는데~~” 했다죠. 라면 하나도 무척 귀한 시절이었는데요.
“목사님~ 길을 지나가고 있는데요. 엄마가 아기를 업고 가는데 그 아기 손에 사과가 있는 거예요~”
“근데요~ 그게 얼마나 먹고 싶던지, 그 아기 사과를 슬며시 빼앗아서, 사과 꼬다리까지 다 먹었었다니까요~~”
“아~~ 그래도 애 사과를 뺏어요?”
“그러게요~~ 제가 그때 왜 그랬는지~~, 근데 너무 먹고 싶은 거였어요~~”
“사과하니까 생각나는데요. 울 엄마는 ‘서울 사람들은 사과도 깎아 먹음서 병을 제일로 달고 살아야!’ 하셨거든요” 하며 어려운 시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오늘 우리는 조선시대 임금님보다 더 잘 먹고, 좋은 환경에서 사는 건 분명합니다. 예전 영양실조는 못 먹어 걸리고, 지금은 안 먹어 걸리는 거고요. 예전 없던 시절 사과 껍질은 그것조차 아까워 그냥 먹어야 되는 거였구요. 지금 사과 껍질은 모든 과일에는 껍질에 영양분이 많다는 걸 생각해 그냥 먹는 겁니다.
라면이야 지금 건강을 생각해 안 먹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예전에 라면 하나는 무척이나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이런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행복하세요?”라고 물으면, “네~”라고 대답할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돈은 많아졌는데, 먹을 건 지천인데, 우리들 마음은 예전보다 이웃을 잃어버린 외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가족이라도 함께 식사자리가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지는 않을까요?
외롭고 힘들고 피곤하고 재미가 없는 이런 시대를 우리는 그냥 그렇게 살아갑니다.
정(情)과 나눔,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이웃은 교회 공동체 아닐까? 교회 공동체만이 외롭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이웃과 함께하고, 함께 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하고 최후의 보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은 혹시 “사과도 깎아먹으면서 힘들다, 어렵다, 죽겠다”라는 말을 달고 사는 그리스도인은 아니시겠지요~~
165. 이찬용 목사의 행복한 목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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