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쳐를 부르다
종교개혁적 동료 외콜람파드, 부쳐, 블라러(Blarer)를 한동안 울름으로 초대하였다. 그들의 도움으로 울름의 종교개혁을 성사시키고자 했다. 그들이 울름 시를 방문하였을 때, 잠은 츠빙글리의 신학 사상에 근거한 새로운 교회법을 형성하고자 했다. 이렇게 하여 7년 동안의 투쟁으로 잠은 비로소 1531년 6월 31일 비로소 미사를 폐지하고, 울름의 종교개혁을 성취하였다. 그러나 울름 시의회는 잠의 심적 고통을 잘 알면서도 슈말칼드 동맹을 위해 어쩔 수 없이 1532년 4월 루터교 아우구스타나 신앙고백과 그 변증에 서명했다. 이렇듯 울름 시는 잠과 더불어 종교개혁의 현장으로 변했으며, 시민들은 새로운 신앙으로 경건한 삶을 맘껏 누리게 되었는데, 이는 재세례파의 혼란이 암암리에 도시에 번져가기 전까지였다.
재세례파의 정체
주의 은혜와 평화를 기원하며 시작하는 편지는 “신실한 진리의 파수꾼” 콘라드 잠이 재세례파에 의해 어려움을 당한다는 긴박한 소식 때문에 츠빙글리가 여느 때와는 다르게 서둘러 답장하고 있음을 밝힌다. 문제는 재세례파가 점점 더러운 무리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나름의 관용을 보였던 츠빙글리 역시 이들과의 이견으로 논쟁하지 않을 수 없는 불편한 사이가 되었다고 밝힌다. 그들의 도를 넘는 뻔뻔함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빈번히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츠빙글리에게 안타까운 사실은 믿는 자들이 그들로부터 유혹을 받고 있는데, 다행히 정신을 차려 재세례파의 오류를 깨닫고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많은 신자가 재세례파와 상종하기를 꺼리지 않았음을 츠빙글리는 밝힌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그들의 거짓, 독한 미움을 품은 위선으로 그들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어쩔 수 없이 진리의 방패를 들고 그들의 오류와 공격을 막아내고 무찌르기 시작하게 되었고, 그때 마침 진리의 빛이 비쳤다. 많은 남녀가 이곳저곳 그럴듯한 재세례파의 수다와 번지르르한 유혹에 빠져들었지만, 다행히 그들은 금방 알아차리고 빠져나왔다. 천국을 손가락으로 만져보고, 4두 마차로 하늘을 오른다는 식의 허황된 이야기로 성도를 현혹하는데, 그럴수록 콘라드 잠이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하고, 그들의 위선이 밝히 드러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장형
잠이 안드레아스에게 썼던 편지에서 말했던 것처럼, 재세례파로서 농민전쟁의 편에 섰던 목회자 빌헬름(Wihelm Roeublin, ca 1490-1559)을 파렴치한이라고 츠빙글리는 공격한다. 농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세금과 십일조세 의무를 파기한 빌헬름이야말로 재세례파의 문이며. 무모한 사람으로 말은 그럴듯하게 잘하지만, 지혜롭지 못한 자라고 비판한다. 지금까지 받아들였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그들이 무시하고, 기독교를 부패한 마술로 보는 이단으로서 기독교 전 역사를 통틀어 가장 수치스러운 집단으로 츠빙글리는 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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