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를 피해야 했던 초기 교회의 예배는 전도와 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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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를 피해야 했던 초기 교회의 예배는 전도와 무관했다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0.10.1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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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 초기 기독교회에서의 예배와 전도 ①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 곧 중간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두 가지 사명을 말할 때 첫째는, 문화적 사명(cultural mandate, 창 1:28)이고, 다른 하나는 전도의 사명(evangelistic mandate, 마 28:19~20)이라고 말한다.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지상명령’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초기 기독교와 그리스도인들은 이 명령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또 이 시기 예배와 전도의 상관관계는 어떠했을까? 많은 이들은 예배가 전도의 도구일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한때 유행했던 ‘구도자 예배’ 혹은 ‘열린 예배’가 바로 이런 경우이다. 반대로 어떤 이들은 예배와 복음전도는 함께 할 수 없는 분리된 개념이라고 보기도 한다. 복음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그들의 논리이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구도자 예배 혹은 열린 예배는 사실상 인정될 수 없다. 그렇다면 초기 기독교는 예배와 복음전도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이번에는 이런 문제에 대해 답해 보고자 한다.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몇 가지 항으로 정리하여 소개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초대교회의 예배와 전도에 대해 연구했던 알렌 클라이더(Alan Kreider) 박사의 연구를 참고하였음을 밝혀둔다.

첫째, 초기 기독교회에서 예배와 전도는 무관했다는 점이다. 예배는 전도의 방편이 아니었다.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교회가 설립된 이후 처음에는 이교도들도 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 23절에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않겠느냐”고 하시면서 은사, 곧 방언의 절제에 대해 가르쳤는데, 이 본문을 보면 믿지 않는 이들도 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린도교회는 이교도들의 교회 방문이나 예배 참석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60년대 중반 네로의 박해 이후 초기 교회는 비신자인 외부인들을 제외시켜야 할 필요성을 깨달은 것으로 보인다. 박해 하에서 기독교인들은 은밀하게 회집해야 했고, 비신자들이 그런 은밀한 집회에 참석할 이유도 없었다. 이 점은 플리니(Pliny)가 트라이얀(Trijan)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기독교인들의 집회를 ‘은밀한 집회’라고 언급한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기독교를 비난했던 이교 철학자 켈수스(Celsus)나 세실리우스(Caecilius)는 그리스도인들을 ‘비밀 단체’라고 불렀고, 로마제국은 기독교를 ‘비밀 결사체’로 보았던 것이다. 아테네의 변증가 아데나고라스(Athenagoras)가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거짓 정보 제공자들이 교회로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오르겐은, “속임수를 즐기는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들이 말하는 거짓 정보 제공자들이나 속임수를 즐기는 자들이란 이교도나 불신자들을 의미했다. 그래서 로마제국의 여러 지방에 흩어져 살던 그리스도인들은 예배 참석에 합당한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지키는 사람을 배치했을 정도였다. 4세기 중반 이후에 기록되었다고 판단되는 ‘우리 주님의 말씀’(Testamentum Domini)에서 집사의 주된 의무 중 하나가 교회의 경비원(ecclesiastical bouncer)이었다는 기록을 알란 클라이더는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점들을 검토해 볼 때 1세기 중반 이후 이교도들의 예배 참석은 허용되지 않았고, 따라서 예배와 전도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예배가 이교도들에게나 외부인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인가는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예배는 근본적으로 신자들의 모임이었고, 외부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외부인들은 예배에 참석할 수도 없었으므로 전도의 방편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초기 기독교가 성장할 수 있었을까?

 백석대 석좌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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