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겨자씨만한 믿음을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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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설교] 겨자씨만한 믿음을 간구합니다
  • 권오석 목사
  • 승인 2020.09.2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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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석 목사/오사카희망교회 담임

| 마태복음 17:14~21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본문 말씀은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변화산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 후에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자기 아들의 간질병을 고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하기를 예수의 제자들은 고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그 사람을 향하여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잡고 꾸짖을 때 그 아이로부터 귀신이 나가고 그 후부터 정상인이 되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신뢰나 신념과는 그 차원을 달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겨자씨 한 알의 살아있는 믿음을 간구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겨자씨는 살아있는 생명이 있습니다.
씨 안에 생명이 있는 것처럼 겨자씨만한 믿음은 생명의 믿음을 말합니다. 생명이 있다는 말은 그 믿음이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생명과 직결합니다. 겨자씨가 자라서 새들이 깃드는 나무로 자라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은 죽지 않고 움직인다는 말입니다. 겨자씨는 가만히 있는 정체가 아니라 약동하는 생명의 씨입니다.

2. 겨자씨는 성장하는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성장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도 아니합니다. 씨가 싹이 나고 잎이 줄기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고 결실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성장이 없는 신앙생활은 자신이 피곤할 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들을 힘들게 합니다. 성장이 없고 생명을 줄 수 없는 교회를 주님은 결단코 원하지 아니하셨습니다.

3. 겨자씨는 희생하는 생명이 있습니다.
한 알의 밀이 떨어져 죽는 것을 희생이라고 합니다. 이 희생은 자발적인 성질의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말합니다. 이것을 겸손이라고 말하고 희생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겸손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는 자기부정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작은 희생 같이 보이나 온 인류를 향한 예수님의 자기희생이요 생명의 열매를 의미합니다.

4. 겨자씨는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믿음입니다.
“못할 것이 없다”는 말은 어떤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nothing shall be impossible to you)는 말입니다. 이 말은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능력은 오로지 그 효력이 자신을 믿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에 의해서만이 실현된다는 말입니다.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는 것은 큰 믿음입니다. 작든지 크든지 믿는 다는 것은 위대한 것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은 믿음과 행함이 일치할 때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합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은 현실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을 간구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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