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동역자
츠빙글리는 하나님 나라는 다수가 가는 넓은 큰 길이 아니라, 협착하고 좁은 길이며, 이 길에 창조적 소수가 참여함을 강조한다. 그 길은 결코 안일한 길이 아니며, 이 땅에 불을 뿌리는 것이라는 말씀을 상기한다. 츠빙글리는 불같은 시련에 누가 기꺼이 동참할 것인지를 반문한다. 그렇기에 이 시련을 피하도록 부모가 우리를 잘못된 길을 가도록 하고, 형제가 우리를 사망의 길로 이끌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세상의 명예를 따르든지, 아니면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싸우든지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싸울 때, 그는 견고한 반석 위에 집을 세운 지혜로운 아버지 같은데, 그가 불 가운데 던져질지라도 그리스도께서 털끝만큼도 그를 상하지 않게 지키신다는 것이다. 사망, 생명, 칼과 그 어떤 것이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성도를 갈라놓을 수 없기에, 세상을 이긴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위로가 됨을 츠빙글리는 강조한다. 크리스천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이겼다고 확실히 선언한다. 무엇보다 그리스도가 세상을 이겼기 때문이다.
물론 츠빙글리는 인간 스스로 돌아볼 때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안다. 그러기에 인간은 더욱 견고히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붙잡아야 하는데, 이는 환난의 시대 성도가 누리는 진정한 위로이다. 그러기에 츠빙글리는 시련이 아무리 강할지라도 이러한 믿음의 확신 가운데 주를 위해 가능한 많은 사람이 주의 군병으로 용감하게 나설 것을 호소한다. 이때 츠빙글리의 순교 각오와 외침은 절정에 이른다. “나는 믿습니다. 교회가 피를 통해 생명에 이른 것처럼, 다른 무엇이 아니라 역시 교회는 순전히 피를 통해서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루터의 파문
츠빙글리의 대적자들을 향한 전의는 뜨겁게 불타오른다. 마치 죽을 각오를 하고 전장을 향하는 용사처럼 미코니우스가 영적 싸움에 동참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호소한다. 어느 때고 세상은 그리스도와 화목한 적은 없고,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양을 늑대 무리 가운데 보냈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양이 되기 위해서는 죽음을 무서워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
이 대목에서 츠빙글리는 루터의 교황청으로부터의 파문을 언급하며, 자신 역시 그러한 출교가 선언되더라도 전혀 두렵지 않음을 고백한다. 교회 파문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정의롭지 못한 그러한 정죄가 결코 영혼에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루터가 옳으냐 그른가는 자신들이 판단할 일이 아님을 언급하면서도, 편지를 받는 미코니우스가 츠빙글리의 입장을 익히 알고 있는데, 교황이 루터에게 파문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조언을 할 거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츠빙글리가 루터와의 독자성을 말하지만, 루터를 늘 귀하게 여기고 있는 점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