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설교] ‘광야’와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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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설교] ‘광야’와 ‘말씀’
  • 김성구 목사
  • 승인 2020.05.2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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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구 목사 / 푸른초장교회 담임

| 민수기 1:1, 사도행전 8:26~39

여호와의 말씀(메다베르)은 광야에서(미드바르) 들려올 때가 많습니다. 이스라엘의 선택 과정은 거의 광야에서 일어났으며, 광야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광야와 말씀’은 분리할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소유(고향, 친척까지)를 버리고 ‘내가 네게 지시한 땅’(신앙으로 보여준 땅)으로 가라고 명령을 내리십니다(창 12:1). 여기서 지시한 땅이란 ‘광야’로 가라는 뜻과 같은 말입니다. 

이토록 아브라함은 황무지 광야를 배회하면서 광야(미드바르) 그곳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조상으로,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성장합니다. 애굽에서 종살이로 고통 받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의 구출사건도 광야에서 시작됩니다. 모세는 미디안광야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으며, 광야에서 지도자로서의 훈련을 쌓았으며, 광야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들은 후에 절대의 지도자로 변화하였습니다. 애굽에서 구출 받은 이스라엘도 시내산 호렙에 이르러 여호와로부터 계약(契約)과 법령(法令-토라)을 받습니다. 광야는 말씀이 들려오는 곳이요, 말씀의 훈련장이기도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광야에서 말씀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갈멜산 대결에서 이세벨의 종교인 바알 선지자들을 모두 죽인 후 의기양양하고 있을 때, 악녀 이세벨의 살기등등한 위협이 엘리야에게 임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생의 위협을 느끼고 남방과 브엘세바를 거쳐 스스로 광야에 들어갑니다(왕상 19:4). 그 후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원할 때,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 다시 생기와 힘을 얻게 됩니다.  그 후 다시 40주야를 행군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모세를 연상케 함)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시 백성들에게 기쁨의 소식을 전하기 전에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재확인하기 위해 광야(미드바르)로 들어가십니다(마 4:1~11). 사탄의 시험을 통하여 자신의 사명을 확고히 하십니다. 물질의 힘과 영광된 자리, 대중의 인기와 명예, 기적을 행함으로 얻는 높은 자리를 일언지하에 물리치고 사탄을 굴복시키십니다. 사막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 유혹을 물리치십니다. 광야에서 말씀으로 이 엄청난 사탄의 유혹을 뿌리치고 승리하십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말씀을 들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인생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의 보이는 말씀(다바르)이십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광야가 있어야 합니다. 아스팔트 길 위에, 고층빌딩의 숲 속에서, TV, 컴퓨터, 스포츠의 소음 속에서, 분주히 오고 가는 인파 속에서 현대인들은 살고 있습니다.  도무지 광야가 없습니다. 마음의 광야가 있어야 합니다. 삶에 지친 내 마음 한 구석에, 살아남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내 마음속에 광야가 있어야 합니다. 광야가 있어야 주님을 만날 수가 있고,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음성은 너무 세미하게 들려오기 때문에, 일체의 소음이 없는 광야가 있어야 합니다. ‘광야’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광야는 어디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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