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사회학–감동적인 이웃사랑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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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의 사회학–감동적인 이웃사랑 확산
  • 김종생 목사
  • 승인 2020.03.24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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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생 목사/글로벌디아코니아센터 상임이사

마스크가 사회적 현주소의 기준이 되었다. 누군가는 보건용 마스크를, 다른 누군가는 산업용 마스크를, 다른 누군가는 덴탈 마스크를, 또 다른 누군가는 면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아예 마스크를 살 수 없는 아이들과 독거노인들은 마스크 없이 지내기도 한다. ‘등록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코로나는 더욱 가혹하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등에겐 마스크 살 자격(주민등록번호나 외국인등록번호가 확인돼야 가능)도 주어지지 않았다. 바이러스가 자격을 따져 침투하진 않았지만 바이러스를 방어할 마스크는 자격이 있어야만 구할 수 있다. 공적 마스크라지만 수 많은 이주민들을 차별하고 배제하고 있으니 과연 공적인가라고 사회적으로 묻게 된다. ‘마스크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자면 공격적인 시선들을 감수해야 한다. 건강보험의 보장이 되지 못하는 이들은 치료비가 없어 아프면 안 된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평소 눈에 보이지 않던 가난한 사람들을 재난의 맨 앞자리에 보이게 하여 가난이 코로나에 더 치명적임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

부모가 집에 머물며 돌볼 형편이 못 되는 아이들에게는 ‘사회적 거리두기’보다 다급한 것은 혼자 두지 않는 보살핌이다. 일을 쉬어야 바이러스를 피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일을 쉴 수 없었고 바이러스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가난한 이들을 고려하거나 배려하지 않고 거침없이 내몰고 있다. 이윤만을 목적으로 하는 천민자본주의는 가난한 노동을 밀집시켰고, 가난은 노동의 ‘거리두기’를 허락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작가 하인 머레이는 “재난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영원한 허상을 버려라. 그리고 재난은 모든 걸 ‘사회적으로 평등하게’ 쓸어간다는 생각도 버려라. 전염병은 쫓겨나서 위험 속에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사람들을 집중 공격한다”고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는 현실을 지적하였다. 코로나 19는 약자에게 더 없이 가혹했고, 감염 공포는 약자를 향한 차별로 확대 재생산해 냈다. 바이러스 감염이 국적과 지위를 초월한다고는 하나, 피해의 영향력은 그 누구보다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곳들에서 이렇게 더욱 더 치명적이다. 

뉴욕대학의 사회학자 에릭 클린버그는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 개인의 신변 안전보다 더 신경을 써야할 것이 바로 사회적 연대”라고 말했다. 옆집 사는 연장자의 문을 두드리고, 친구와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화를 하고, 집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배달해 주는 자원봉사를 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라고 그는 주장한다. 

전쟁의 마당에서 우리 사회 우리 교회는 제정신을 차리기 어려운 실정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러한 암울하고 답답한 상황에서 우리 교회 우리 교인들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회복해야 할 소중한 과제들을 찾아 보는 것이 절실해 보이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의 형제애를 다시 한 번 표출하는 감동의 스토리를 만들어 보기를 제안해 본다.  

지난 19일 울산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 ‘이웃분들 손소독제 가져가세요. 이 손소독제 안에는 우리가족의 사랑이 있답니다. 다음에는 용돈을 모아 더 많이 만들께요’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13층에 사는 희연이(5학년)와 동생 희진(1학년)양 가족이 만든 24개의 소독제는 불과 몇 시간 만에 소진됐고 빈 바구니에는 사탕과 초콜릿, 음료수 등의 간식으로 채워졌다. 이어진 답글에는 ‘고마워요. 13층의 천사님’, ‘감사해요. 건강 잘 챙기세요’, ‘예쁜 마음 고마워요’ 등의 답글들이 적혀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교회의 감동적 실천이 가난한 이웃을 향해 확산되어 코로나의 흉흉함을 몰아내고 주님의 따스한 봄바람 되어 삼천리 방방곡곡으로 퍼지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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